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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잘 모르지만…" 제주 4중 추돌사고에 20대 헌혈 열기

뉴스1

입력 2021.04.08 18:37

수정 2021.04.09 16:56

8일 오후 5시 제주시 이도2동 헌혈의집 한라센터가 헌혈자들로 북적이고 있다.2021.4.8/뉴스1 © 뉴스1
8일 오후 5시 제주시 이도2동 헌혈의집 한라센터가 헌혈자들로 북적이고 있다.2021.4.8/뉴스1 © 뉴스1


6일 오후 5시59분쯤 제주시 아라1동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제주시내 방향으로 달리던 8.5톤 화물트럭이 시내버스 2대와 1톤 트럭을 잇따라 들이받아 3명이 숨지고 59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독자 제공)2021.4.6/뉴스1 © News1 홍수영 기자
6일 오후 5시59분쯤 제주시 아라1동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제주시내 방향으로 달리던 8.5톤 화물트럭이 시내버스 2대와 1톤 트럭을 잇따라 들이받아 3명이 숨지고 59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독자 제공)2021.4.6/뉴스1 © News1 홍수영 기자


8일 오후 5시 제주시 이도2동 헌혈의집 한라센터에서 헌혈자 이주성씨(26·문화조형디자인전공)가 제주 4중 추돌사고 피해자를 위한 '지정헌혈 의뢰서'를 손에 쥐고 있다.2021.4.8/뉴스1© 뉴스1
8일 오후 5시 제주시 이도2동 헌혈의집 한라센터에서 헌혈자 이주성씨(26·문화조형디자인전공)가 제주 4중 추돌사고 피해자를 위한 '지정헌혈 의뢰서'를 손에 쥐고 있다.2021.4.8/뉴스1© 뉴스1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얼굴도 모르지만 제발 살아만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8일 오후 5시 제주시 이도2동 헌혈의집 한라센터.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혼저옵서예(어서 오세요의 제주어)'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간판이 사람들을 맞는 이곳은 이미 헌혈에 나선 이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둘러보니 헌혈자 대부분은 젊은 20대 청년들이었다.

손에는 저마다 대기번호가 적힌 작은 순서표와 함께 지정현혈 의뢰서가 들려 있었다.

의뢰서를 보니 하나같이 혈액형은 모두 AB형이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수혈 대상처도 '한라병원', '김OO'라고 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헌혈자들은 계속 헌혈의집으로 밀려 들어왔고, 현장의 한 관계자는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하며 헌혈자들을 안내하기 바빴다.

현재 이곳을 포함해 제주에 있는 모든 헌혈의집은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모두 지난 6일 저녁 제주대학교 앞 사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벌어진 4충 추돌사고로 현재 한라병원 외상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김모씨(21·여)를 돕기 위해서다.

김씨는 사고 당시 시내버스에 타고 있었다. 그러나 8.5톤 화물트럭이 김씨가 타고 있는 시내버스와 또 다른 시내버스 1대, 1톤 트럭을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변을 당하고 말았다.

사고 직후 김씨는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가 소방과 병원 측의 신속한 심폐소생술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상황 속 김씨의 아버지가 딸을 위한 지정헌혈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김씨 아버지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주저하며 "(딸이) 사고 당시 피도 많이 흘리고 오늘 새벽에 또 긴급히 수술을 받게 되면서 피가 많이 모자란 상황이다. 염치 불고하고 도와 달라는 말을 드린다"고 어렵게 입을 뗐다.

김씨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에 가장 먼저 팔을 걷은 건 김씨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학생들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바름씨(21·여·회계학과)는 "총학생회뿐 아니라 제가 속한 단과대학 학생회 차원에서도 헌혈 독려가 활발한 데다 여기에 호응해 주는 학생들도 정말 많다"며 "(김씨와는) 잘 모르는 사이지만 하루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주성씨(26·문화조형디자인전공) 역시 "(김씨가) 친한 친구와 같은 학과인데 헌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헌혈의집으로 달려왔다"며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고 했다.

제주대 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뜨거운 헌혈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 학생은 "집에 있다가 학과 단체채팅을 보고 그동안 겁나서 안 했던 헌혈을 하려고 용기냈는데 대기인원이 많아서 시간을 잘 맞춰서 와야 한다고 들었다"며 "오늘은 결국 못하고 내일이나 다음에 또 필요하다고 하면 뛰쳐나갈 생각"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른 한 학생은 "인류애가 상승 중"이라면서 "B형이라 큰 도움은 될 수 없지만 우리 제주대 학우분께서 얼른 쾌차해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제주 4중 추돌사고는 무려 62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3명은 숨졌고, 김씨를 포함한 5명은 중상, 나머지 54명은 경상을 입었다.
그중 33명(52%)은 제주대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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