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불붙은 ‘여성징병제’, 이대남 표심 잡기?···“남녀 갈라치기일 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1 14:40

수정 2021.04.21 14:40

청와대 국민청원 5일 만에 15만 동의
“국가를 지키는 데 성별이 무슨 상관인가”
“아직 일러...군대 준비됐는지부터 점검”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청와대 국민청원과 일부 정치권 안팎 인사들이 밀어올린 ‘여성징병제’ 논란의 불길이 거세다.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청원 동의자가 21일 기준 게시 닷새 만에 15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기사마다 붙은 댓글에는 날이 서있다.

현재 여성징병제를 둘러싼 의견은 찬성, 반대 2가지로 갈린다. 문제는 이분화 자체보다 논의의 수준에 있다. 사실 여성징병은 1999년 군 가산점 폐지 이후 줄곧 화두였는데, 이번에도 모병제 전환의 실질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시점에서 무턱대고 수면으로 떠 갈등만 촉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징병제 도입의 전제는 그것의 ‘효율성’과 ‘성 평등 실현’에 대한 담보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편도 이에 동의하지 못 하고 있다. 소위 ‘이대남(20대 남자)’ 표심을 붙잡기 위해 정치권이 달려든다는 해석도 성별 갈라치기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현재 정치권에서 띄우는 화두의 끝은 남녀 갈등일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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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로는 가잖아” vs “아직 일러”
여성징병에 대한 일반적인 찬성 의견은 지난 16일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잘 나타나있다. 작성자는 “더욱 효율적인 병(력) 구성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이미 장교나 부사관으로 여군을 모집하고 있다. 여성의 신체가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는 핑계”라고 잘라 말했다.

이 주장에 찬성표를 던지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왜 징병제인데 남자만 가냐”, “임신이랑 군복무랑 같은 선상에 놓지 마라”, “장교는 되고 사병은 안 되나” 등의 반응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생 이모씨(26·여)도 “휴전 국가에서 전쟁 땐 누구나 안보에 기여해야 한다. 여성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며 “여성도 당연히 총기 사용법과 생존 전략을 익혀야 한다”고 짚었다.

사업을 하는 김모씨(29·남)는 “기본적인 군사교육은 누구나 배워야 하는 것. 자신과 국가를 지키는 일이 성별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다.

실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7월 남성 1036명과 여성 9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성 53.7%가 여성도 군대를 가야한다는 데 동의했다.

반면 여성징병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같은 당 권인숙 의원 주장이 박용진 의원이 미는 ‘남녀평등복무제’와 동일한 내용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으나, 차이가 있다. 권 의원은 ‘모병제 전환’에만 동의했을 뿐 여성징병을 두고는 “지금 단계에서 (답하기) 굉장히 섣부르다. 조심스레 논의를 시작하는 것엔 찬성한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직장인 김모씨(28·여)도 “설령 여성들이 (군대를)간다고 해도 (군이)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의문이다”라며 “지난 2년 간 한국사회의 화두는 권력형 성범죄였다. 상명하복의 군 체계에서 여성 유입에 따른 문제를 방지할 방편은 마련돼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고 변희수 전 하사가 근무하고 싶다는 입장을 냈을 때, 군은 여성용 시설을 따로 지어야 한다며 비용 문제를 거론했다”며 “군은 여성징병이 과연 효율적인가에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 사진=뉴스1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 사진=뉴스1
“현실성 없는 대안으로 남녀갈등만 조장”
여성징병 찬성자들도 ‘남자가 가니 여자도 가야 한다’는 수준의 논리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권의 겉핥기식 논지 설파를 더욱 우려했다. 다만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군대에 가는 건 불합리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여성징병에 찬성표를 던졌던 이씨는 그 이유로 “(남성 징병제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 미복무 남성들에 대한 차별의 빌미를 제공한다”며 “남성은 국가를, 여성은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전근대적 사고가 깔려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역시 찬성했던 김씨는 “20대 남성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인들이 이 문제(여성징병제)를 논한다고 하는 건 1차원적인 생각”이라며 “해당 정치인, 해석한 일부 언론의 의도와 상관없이 여성을 적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박용진 의원은 ‘남녀평등복무제’를 연일 띄우고 있다. 40~100일 정도 남녀 모두 군대를 다녀와 예비군으로 편입되고,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자는 게 주장의 골자다.

하지만 남녀가 동일한 환경에서 같은 기간 군 생활을 한다는 게 곧 성 평등 달성은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최모씨(28·남)는 “(모병제는)가고 싶은 사람만 가는 게 핵심이지, 여성을 보내야 한다는 발상에는 동의 못 한다”며 “20~30대는 젊은이로 묶일 뿐이지 ‘여성징병제’ 주장은 (남녀)갈라치기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녀 갈등에 불을 붙인 채 정치인 본인은 슬그머니 빠진다”고도 덧붙였다.

결국 현실은 개선시키지 못한 채 가상의 다툼만 유발한다는 것이다. 모병제를 위한 재원은 충분한지, 전환 시 효율적인지, 실현 가능한지 등에 대한 답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모병제로 가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 없는 ‘입술 서비스’로 2030 표나 얻어보겠다는 포퓰리즘”이라고 평가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젠더 갈등을 통한 주목경쟁, 정치장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논란이 불붙자 군 당국은 “병역의무 대상과 복무기간, 민방위 편입 등 병역법과 민방위기본법에서 많은 개정 소요가 따를 것”이라며 “여성징병 문제는 소요 병력 충원에 국한되지 않고, 양성 평등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취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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