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오는 6월 대선을 앞둔 이란에서 중도파 대권주자로 꼽히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비난하는 인터뷰 녹음이 누출됐다. 외신들은 혁명수비대가 사실상 대선 후보를 검증한다며 이슬람 우파 세력이 이번 사건을 구실로 중도 진영을 견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이 입수한 녹음 파일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녹음 파일은 이란 외무부에서 정부 기록용으로 지난 2월 24일 녹음했으며 누출된 부분은 전체 7시간 분량 중 3시간 분량이었다. 자리프는 당시 이란 개혁파 언론인 사이드 라일라즈와 인터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당국은 이란 인터내셔널이 이란과 적대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을 받는다고 보고 있다.
자리프는 인터뷰에서 “많은 외교관들이 군부의 영역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느라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군부 쪽에 대가를 지불했지만 군부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자리프는 지난해 1월 3일 이라크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폭사한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언급했다. 자리프는 “솔레이마니는 내가 (외교) 대화에 나설 때마다 끼어들었다”라며 “그는 내게 ‘대화에서 이러한 부분을 이용하길 바란다’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를 나열했다”고 주장했다. 자리프는 솔레이마니가 러시아와 접촉할 때도 사사건건 간섭했다며 “예를 들어 내가 시리아와 이란을 잇는 이란항공 노선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리프는 이외에도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방해한다고 의심했으며 지난해 혁명수비대가 테헤란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 시켰을 당시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수비대가 이란의 외교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냉전 시대와 비슷했고 혁명수비대와 관계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란군과 별개로 분리된 정치 군대로 1979년에 창설되어 우파 이슬람 정권의 신정정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 솔레이마니는 혁명수비대 실세로서 이란의 중동 정책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외무부는 해당 인터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인위적으로 발췌된 내용 때문에 문맥이 왜곡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허가된다면 전체 인터뷰를 공개하겠다고 주장했다.
FT는 이번 사태로 자리프와 이란 중도 정부의 미래가 위험해졌다고 우려했다. 중도 성향의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오는 6월 18일 대선을 끝으로 임기가 끝난다. 이란에서는 로하니 정부 임기 동안 미국의 핵합의 파기와 솔레이마니 암살 등이 일어난 만큼, 이번 대선에서 혁명수비대가 지지하는 이슬람 우파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자리프는 현재 중도 진영에서 최우선 대선 후보로 불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혁명수비대 관계자는 혁명수비대측이 일단 이번 녹음으로 자리프를 해임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도파에서는 혁명수비대가 이번 일을 구실로 자리프의 대선 출마를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선에 입후보하려면 우파가 장악한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만 한다.
자리프 본인은 이번 인터뷰에서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진행 중인 핵합의 복원 협상을 언급하고 대선 출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가 바뀌고 있고 이번 달은 매우 중요하다”며 “나는 이란 내부 정치보다는 외교 관계에 집중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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