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 =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인 A씨(30)는 여자친구와 젠더 관련 대화를 최대한 피하고 있다. 혹시 모를 싸움으로 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5년 전 여자친구와 '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싸우고 헤어졌다는 A씨는 "최근 젠더 갈등을 보면서 여자친구와 관련해서 대화하면 싸움으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잘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는 "2030 남성들 대다수는 여성혐오나 여성차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이에 반대할 것"이라며 "다만 취업에 수없이 실패하며 혜택을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모든 남성이 혜택을 받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는 식의 발언을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이 격화되면서 이처럼 연인·친구·동료 등과 젠더이슈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남녀 간의 극단적인 대립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합리적인 소통을 막아버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6년 만난 남자친구와 젠더 이슈에 대해 대화를 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진다는 강모씨(26)는 "오래 만나면서 남자친구와 거의 싸운 적이 없는데 젠더 문제 관련해서는 각자가 겪는 차별에 대해 집중하다 보니 싸우게 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강씨는 "서로 경험이 다르다 보니 입장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며 "온라인상에서 남녀가 서로를 깎아내리는 모습들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남자친구와 관련 대화는 피한다"고 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남초·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토론이 아닌 '화력전'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최근 온라인에서 사용된 신조어 '허버허버'(허겁지겁 먹는다)와 '오조오억'(많다) 등의 표현이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 표현을 사용한 유튜버 고기남자 등은 사과를 해야 했다.
또 '허버'라는 표현 등이 나온 네이버 웹툰 '바른연애 길잡이'의 내용이 남초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여성혐오 표현을 댓글로 게재하거나 별점을 낮추는 등의 공격을 하기도 했다. 이에 여성들도 '댓글 정화 총공격'으로 대응하면서 갈등은 격화 중이다.
이외에도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 "페미니스트 대환영" 등이 적힌 채용공고문이 온라인상에 올라오면서 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직장인 이모씨(28)도 "몇년 전 젠더갈등이 심할 때는 유난스러운 사람들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최근 펼쳐지는 젠더 갈등 양상을 보면서 주변 남성들도 그렇지는 않을까 생각하고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녀가 자신들의 청년 문제를 공유하면서도 '성별 차별'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오프라인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온라인상 극단적 대립으로 인해 젠더 관련 논의가 오프라인에서 금기시되면 결국 또 온라인에서만 얘기하는 악순환이 된다"며 "현실에서 여성과 남성이 연인, 동료, 선후배 등 다양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 관계 안에서 젠더 이슈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달리 대면 소통에서는 상대에게 상처나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대화의 경험치를 쌓아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윤김 교수는 "경제적·사회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으로 인해 '남성 역차별' 담론이 나온다"며 "제도·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취약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되, 청년들 간에도 '성별 차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교육 등의 시스템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정치권은 이를 무시하거나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며 "전문적 지식과 경험, 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에서 여성과 남성이 토론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근본적으로 청년 문제를 해결해야 젠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 갈등에는 비정규직 양산, 빈부격차, 청년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미비 등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 평등 교육이나 처벌만으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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