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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더이상 아프지 않기를…이 영화가 용서와 화해의 시작됐으면" [Weekend 문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06 17:00

수정 2021.05.06 17:05

12일 개봉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돌아온 국민배우  안성기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주연배우 안성기 /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주연배우 안성기 / 엣나인필름 제공

"1980년 5월 당시, 저는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을 찍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나 광주의 진상을 알고 다수의 국민들처럼 저 역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이젠 이러한 비극적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나 미얀마에선 지금 일어나고 있잖아요. 5·18민주화운동의 아픔 역시 끝난 게 아니고요. 우리영화가 반성과 용서, 화해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안성기 노개런티 투혼

칠순이 코앞인 배우 안성기(69)가 특유의 인자한 이미지를 벗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2007년)에서 퇴역 장교 출신의 시민군을 연기했던 그가 '아들의 이름으로'에서 5월 광주를 잊지 못하고 복수를 다지는 의문의 남자를 연기했다. '화려한 휴가'가 그날의 역사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면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 트라우마와 여전히 고군분투중인 동시대 사람들의 현재를 담는다. 안성기가 연기한 대리기사 오채근은 베일에 싸인 복잡한 인물이다. 겉보기엔 친절한 이웃의 아저씨고 아들 사랑이 각별한 아버지지만, 정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한편 은밀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 5·18 유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단골로 둔 그는 광주 출신 종업원 진희(윤유선)를 만나며 그들의 속사정을 더 잘 알게 되고, 다른 한편 유독 한 손님의 호출을 기다리는데 바로 '왕년의 투스타'인 박 회장 박기준(박근형)이다.
안성기는 6일 화상 인터뷰에서 "그동안 광주를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있었지만 '아들의 이름으로'는 다른 각도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라며 "어떻게 보면 영화가 사건의 정곡을 찔렀다"고 말했다.

'아들의 이름으로'는 광주시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재미보다 의미가 앞선 작품처럼 보이나 같은 소재의 '26년'(2012년)이나 '택시운전사'(2017년) 못지않게 영화적 재미가 뛰어나고 주제의식이 분명하며 여운 또한 강하다. 무엇보다 오채근의 뒤를 쫓아가는 여정이 흥미롭다. 그는 40여년 전 광주에서 무슨 일을 겪었고 아들과 한 약속은 무엇이며, 과연 그의 복수는 성공할까? 안성기 역시 "시나리오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며 "사건 자체는 무겁고 비극적이지만 오채근이라는 인물에게 영화적이고 드라마틱한 지점이 있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두 여자 이야기'(1993년)로 대종상 작품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최진실·박신양 주연의 '편지'(1997년)로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이정국 감독이다. 이 감독은 "저예산 영화라 무명의 배우를 기용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안성기 배우를 언급해 용기를 냈다"며 "시나리오를 보낸지 하루만에 '참 잘 봤다'며 만나자고 하셨다"고 캐스팅 비화를 전했다. 안성기는 이번 작품에 노개런티로 참여하며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사명감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중시한다"며 "비록 배우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못받는다고 해도, 좋은 작품이라면 외면하지 말고 해야 한다고 믿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 엣나인필름 제공
■5·18 극영화로 데뷔했던 감독의 진심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역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시간이 지난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없이 고통은 끝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오채근이 단골식당 손자가 또래들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보고 "왜 맞기만 하고 맞서지 않냐"고 훈계하는 장면에선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지 질문을 받은 기분이 된다.

'아들의 이름으로'는 또한 호남 출신인 이 감독이 자신의 상처를 딛고 다시 한번 도약을 꾀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1990년 극영화 '부활의 노래'로 데뷔했다. 5·18 당시 군복무 중이었던 그는 당시 가족을 걱정하며 애태웠던 마음과 부채의식에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데뷔작을 선보였다. 하지만 영화의 4분의 1이 잘려나가는 고초를 겪고 흥행도 실패하면서 그야말로 인생의 나락을 경험했다.
5·18 관련 이야기를 멀리하던 그는 2011년 광주 시니어들이 모인 '광주영상미디어클럽'과 단편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상처를 극복, 다큐 '반성'(2019년) 등을 완성하며 '아들의 이름으로'를 기획하게 됐다.

그는 "40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최고 책임자들이 단죄를 받지 않고 반성도 전혀 하지않고 있다"며 "'그래, 영화에서라도 한번 광주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는 복수를 하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시나리오 집필 배경을 전했다.
그는 또 "이번 영화의 핵심은 소크라테스 명언"이라며 "'반성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12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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