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어가 자사 반도체가 막대한 전력소모로 기후위기를 재촉한다는 비판을 받는 암호화폐 채굴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했다.
반도체 공급난 속에서 엔비디어의 그래픽카드를 비디오게이머들에게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한 조처다.
18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엔비디어는 대부분 인기 있는 비디오게임용 그래픽카드 성능을 제한해 암호화폐 채굴 연산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더리움을 겨냥했다.
자사 그래픽카드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인증하는데 필요한 연산성능을 지금보다 떨어지도록 고의적으로 성능을 낮추고 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얻기 위해 복잡한 연산을 하면 연산이 끝난 뒤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다. 특히 엔비디어 그래픽카드는 비트코인 채굴보다는 이더리움 채굴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더리움 가격이 뛰면서 채굴의 매력이 높아졌고 이에따라 엔비디어 그래픽카드 수요도 덩달아 뛰었다.
엔비디어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실시간 동영상을 렌더링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동시에 막대한 데이터를 다뤄야 하는 작업이다.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암호화폐 채굴에 제격이다.
이 GPU는 컴퓨터에서 데이터집적도가 가장 높은 인공지능(AI)에도 쓰이고 있고, 여기에 암호화폐 채굴도 끼어들었다.
엔비디어가 암호화폐 채굴에 자사 반도체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기능을 제한한 것은 단골 고객인 비디오 게임 사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비디오 게이머들은 오랜 기간 엔비디어의 핵심 고객층으로 엔비디어의 성장과 순익에 상당한 이바지를 해왔지만 최근 반도체 품귀난에 암호화폐 채굴 붐까지 겹쳐 최신형 그래픽 카드를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엔비디어의 실적이 최근 들어 암호화폐 시장 흐름에 크게 좌우되고 있는 점도 엔비디어가 아예 절연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시장에 계속 휘둘리면 전망이 어두울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카드 기능 제한은 또 다른 노림수도 포함하고 있다.
암호화폐 매니아들을 겨냥해 연초에 엔비디어가 출시한 '암호화폐 채굴 처리장치(CMP)'로 수요를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암호화폐 매니아들이 채굴을 위해 그래픽카드를 포기하고 CMP를 사도록 유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비디오 게임용 그래픽카드는 비트코인보다는 이더리움 채굴에 더 적합하다. 엔비디어에 따르면 지금껏 채굴된 이더리움 약 90%가 자사 GPU를 통해 채굴됐다.
엔비디어는 비디오 게임 뿐만 아니라 이더리움 채굴에도 인기 있는 RTX 3080, 3070과 3060 최신 버전의 기능을 제한해 이더리움 채굴 효율성이 크게 낮아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앞서 엔비디어는 연초에도 RTX 3060 기능을 제한한 바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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