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이준석 후보님, 참 용기를 보여주세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26 10:58

수정 2021.05.2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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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이준석 신드롬'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국민의힘 이 전 최고위원이 24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북문 앞에서 학생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른바 '이준석 신드롬'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국민의힘 이 전 최고위원이 24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북문 앞에서 학생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36세 젊은 바람 정치권 강타
대선 앞두고 여야 모두 주시

출사표에서 "비겁하지 말자"
기득권 연공급제 타파야말로
진정한 용기를 보여줄 기회

[파이낸셜뉴스] 이준석 후보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보네요. 보수색 짙은 국민의힘에서 서른여섯살 0선 당원이 당대표에 도전하다니요. 게다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라구요?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유쾌한 반란을 꿈꾼다'는 글을 올렸다죠?

김종인 전 국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940년생입니다. 1985년생인 이 후보님과 45년 차이가 납니다. 만약, 만약에 말이죠, 이 후보님이 국힘 당대표가 된다면 세계 정당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되지 않을까요? 정당 대표 자리가 81세에서 36세로 껑충 건너뛰는 격이니까요.

과연 될 수 있을까요? 누가 알겠습니까?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하면 6·11 본선에서 당원(70%), 일반시민(30%) 선택으로 결판이 나겠지요. 당대표 후보 중에는 쟁쟁한 이름이 즐비합니다. 50대 초반 초선들의 활약도 만만찮아 보입니다.
당대표가 되든 안 되든 이 후보님의 도전은 한국 보수당사(史)에 진기록으로 남을 겁니다.

1966년생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2005년 39세에 보수당 지도자로 선출됐다. /사진=뉴시스
1966년생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2005년 39세에 보수당 지도자로 선출됐다. /사진=뉴시스

◇영국 캐머런과 닮은꼴

이 후보님을 보니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떠오릅니다. 캐머런은 1966년생으로 2005년, 곧 39세에 보수당 지도자가 됐습니다. 이어 2010년 44세에 총리가 됐구요. 역대 최연소 총리 기록입니다.

영국 보수당이 어떤 곳입니까? 무려 200년 생명력을 이어온 전통 있는 정당입니다. 캐머런이 당권 도전장을 던지자 역시 경험이 얕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캐머런은 이같은 열세를 전당대회에서 원고 없는 연설로 단박에 역전시킵니다. 캐머런은 이때 "보수당원이 되는 것을 다시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겠다, 보수당의 새로운 세대를 열겠다"고 약속합니다. 당시 보수당은 노동당 출신 토니 블레어 총리의 그늘에 묻혀 있었거든요. 보수당 의원들과 당원들은 이런 캐머런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죠.

캐머런은 2001년(35세)부터 의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후보님은 비록 최고위원(미래통합당)은 했지만 의정 경험은 더 얕다고 볼 수 있죠. 경험 미숙은 전당대회가 끝날 때까지 족쇄처럼 이 후보님을 따라다닐 겁니다.

◇출사표를 읽어보니

이 후보님이 발표한 출마선언문을 세번 읽었습니다. 비겁하지 말자는 말이 가장 가슴에 와닿습니다. 당내 일부 세력이 작년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할 때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것, 박근혜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경종을 울리지 못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네요.

모든 것을 개방하자는 말도 울림을 줍니다. 주요 당직에 경쟁선발제를 도입하겠다, 청년·여성·호남 할당제를 하지 않겠다, 공직선거 후보자에게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 유사한 최소한의 자격을 요구하겠다고 하셨죠. 내년 지방선거를 꿈꾸는 국힘 후보자들, 공부 좀 하셔야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후보님은 "더 자세한 공약과 정견은 꾸준히 여러 경로로 알리겠다"고 하셨어요. 그 중 한가지를 제가 제안할까 합니다. 청년들의 귀가 솔깃할 제안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들통날 수도 있는 무거운 제안입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연공급제 타파라는 십자가

젠더 갈등에 관한 제안이냐구요? 아닙니다. 그 문제는 지금처럼 진중권 전 교수와 잘 풀어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 후보님이 기업 연공급제 타파의 십자가를 짊어지셨으면 합니다. 연공급제는 나이가 벼슬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호봉이 저절로 올라갑니다. 현대차 사례를 볼까요.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9만9000원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추가로 호봉승급분 2만8000원이 따로 있습니다. 호봉승급분은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오릅니다. 노조는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4세로 높여달라는 요구도 잊지 않았습니다.

호봉이 자동으로 오르고 정년이 늘어나면 기업은 어떤 대책을 세울까요? 한정된 임금 총액에서 기존 정규직 노조원들이 가져가는 비중이 커지면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는 채용을 해도 비정규직으로 뽑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쉽게 정리할 수 있거든요. 결국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많이 가져갈수록 노동시장 밖에 있는 청년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구조인 셈이죠.

서강대 이철승 교수(사회학)는 저서 '쌀 재난 국가'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연공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잘라말합니다. "상층 대기업 위주 임금 상승 투쟁을 통한 급격한 임금 인상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연공제는 "노동시장 상위 20%와 하위 80% 노동자들 간의 임금 불평등을 확대하는 주요 메커니즘"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교수는 "한국의 상층 임금 노동자 그룹은 '연공제 담합 연대'"라면서 "이 위계 구조의 핵인 연공제는 조용히 은퇴시킬 때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연공제의 대안은 직무급제입니다. "조직에서 더 일 잘하는 자, 더 힘든 일을 하는 자,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자에게 더 많은 책임과 보상이 돌아가야 공정한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나이가 벼슬인 시대는 지났다는 거죠. 직무급제는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잘 통합니다.

문제는 연공급제 타파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힘들 거라는 겁니다. 문재인정부도 입을 꼭 다물고 있죠. 연공급제를 건드리면 민노총, 한노총과 한판 붙자는 말이나 진배 없거든요. 집권 과정에서 문 정부는 노조 덕을 봤습니다. 그러니 한 배를 탈 수밖에요.

진짜 곤란한 것은 노조의 주장에도 꽤 일리가 있다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은 전형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입니다. 사회안전망이 성글기 때문에 직장을 나오는 순간 소득이 끊기거나 푹 줍니다. 그러니 일자리에 목을 매고, 임금 상승에 목을 매고, 정년 연장에 목을 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후보님이 연공급제 타파의 선두에 서주길 당부합니다. 이는 세상을 향해 '이준석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이기도 합니다. 노조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국힘 당사 앞도 시위로 시끄러울 겁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합니다. 노조를 설득하면서 연공급제를 직무급제로 전환하는 묘수를 찾길 바랍니다. 그게 이 후보님이 대변하는 청년을 위한 길이니까요. 힘들다고 외면하면 그야말로 비겁한 태도가 될 겁니다.

◇거품 빼고 실력으로 승부하길

이 후보님는 출사표에서 파부침주, 곧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힘은 죽을 각오로 내년 대선에 임해야 합니다.

이 후보님께 한번 더 당부합니다. '이준석 현상'에는 거품이 끼어 있어요. 이제 파부침주의 자세로 실력을 보여줄 때입니다.
연공급제는 직장판 장유유서라고 할 수 있지요. 이걸 타파하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사실 이건 실력 이전에 용기의 영역에 속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태껏 어느 정치인도 연공급제와 제대로 싸운 적이 없습니다.
비겁함을 물리치는 이 후보님의 참 용기를 기대합니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이준석 후보님, 참 용기를 보여주세요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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