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파트에서 식물 기르기 마리 팩
영미시 학위 과정을 밟은 첫해
지치고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불쑥 할라페뇨를 길러보기로 했다
집을 옮기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잎은 피고 지고 꽃을 피웠다
졸업을 앞두고 시집을 제출한후
교수님에게 걸려온 전화
"마리 학생, 대단히 발전했어요"
나와 할라페뇨는 함께 성장했다
영미시 학위 과정을 밟은 첫해
지치고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불쑥 할라페뇨를 길러보기로 했다
집을 옮기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잎은 피고 지고 꽃을 피웠다
졸업을 앞두고 시집을 제출한후
교수님에게 걸려온 전화
"마리 학생, 대단히 발전했어요"
나와 할라페뇨는 함께 성장했다
그날은 여름방학 전 마지막 수업이었다. 나는 MFA(Master of Fine Arts) 프로그램 영미시 과정의 첫 1년을 마치는 동안 학교도 다니고 동시에 '가이드포스트' 풀타임 편집자로도 일했다. 그러느라 지쳐버렸고, 의문에 가득 찼다. 내가 MFA 프로그램을 들을 자격이 있나? 동료들만큼 재능이 있나?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진도를 빼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했다.
어느 교수님이 여름방학 계획을 물었을 때,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게을러 보이거나 왠지 이 수업을 들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원 가꾸기요." 그렇게 불쑥 내뱉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나는 식물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정말 좋은 생각이군요, 마리 학생! 에밀리 디킨슨도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어요."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암허스트의 농가에 살았고, 어릴 때 식물학을 공부했다. 나는 당시 20대 후반이었고, 뉴욕시 아파트에 살았고, 한 번 더 말하지만, 정원을 가꿔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며칠 후, 식품 잡화점에서 줄을 서 있다가 묘목들을 발견했다.
'몇 그루를 사 가야겠어.'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정원 가꾸기는 해봤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 케일하고 허브 그리고…저건 할라페뇨(멕시코 고추)였던가? 나는 그것을 집었다. 텍스멕스(웨스턴과 멕시칸의 민족적 요소가 혼합된 것)를 고르듯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도시농부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할라페뇨 모종을 샀어!"
"정원을 가꿀 공간이 있어?"
그가 말했다.
"나는 실외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고추를 길러.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거든."
공간은 없었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알려줬다. 냄비와 약간의 흙 그리고 야망.
"좋아." 그가 말했다.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놀라지만 말아. 할라페뇨는 안에서 기르는 식물이 아니거든."
나는 자그마한 할라페뇨에게 물도 주고 흙도 갈아 주었다. 심지어 말도 걸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는 동안, 그것은 거대하진 않지만 훨씬 크게 자랐다. 자랑스러웠다. 뭐 어쨌든 원예계의 마이너스 손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MFA 두번째 학년을 시작했고, 뉴욕에서 종종 있는 일이듯, 이사를 가야 했다. 책, 옷, 가구 같은 필요 없는 것은 모두 팔거나 나누고 친구 집 지하실로 지내러 갔다. 할라페뇨도 같이 왔다. 내가 살 아파트를 계약했을 즈음엔 이미 12월이 다 되어 할라페뇨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일부는 시들어 갈색이 되었고, 잎들이 많이 떨어졌다. 이 작은 녀석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가 네 새집이란다.'
주방 싱크대 창가에 할라페뇨를 놓으면서 생각했다. 제발 괜찮길. 마치 할라페뇨의 생존 여부가 나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학교 생활을 열심히 했다. 봄이 왔다. 할라페뇨가 살아났다. 새 잎이 나더니 더 크게 자랐다.
'더 많은 식물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자주달개비와 파키라를 키웠다. 페퍼민트, 바질, 라벤더 같은 허브도 키웠다. 할라페뇨가 꽃을 피웠다. 나는 5월에 졸업 논문으로 시집을 제출했다. 어느 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교수님의 전화가 왔다.
"시가 강렬하군요." 그가 말했다.
"대단한 발전을 보였어요."
큰 짐을 덜었다. 내가 해냈어! 다시 설거지를 시작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할라페뇨 꽃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나? 자세히 들여다봤다. 꽃이 있던 곳에, 10센트 동전 크기가 될까 말까 한, 작은 초록색 열매가 밀고 나온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MFA 과정에서 발전했고, 나의 할라페뇨는 내 옆에서 성장했다. 둘 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었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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