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김양호 부장판사를 겨냥해 “김양호 판사가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나,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고 한 것은 대한민국 판사가 아니라 일본국 판사의 논리”라고 비판했다.
추 전 장관은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 판사는 주권자인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판결을 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전날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에 대해 보유한 개인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추 전 장관은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판단은 맞다. 국제연합(UN)이 2005년 12월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한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 및 가이드라인'(일명 피해자 권리장전)에 따르면 개인은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의 주체로서 그 위반을 이유로 상대방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 법인 등을 상대로도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는다”면서 “한국정부와 사법부는 일관되게 '1965년 협정은 민사적 채권채무관계의 정리이지,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일본이 불법행위를 시인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1965년 박정희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는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당사국이 아니어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한·일간 청구권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면서 “2005년 노무현 정부 민관공동위원회도 ‘군위안부, 강제동원 중 발생한 가혹행위 등 당시 일본 정부·군이 관여한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대상이 맞고 소권 소멸합의가 이뤄졌다’고 반박한다”며 “김양호 판사는 청구권은 인정하면서도 사법적으로 소를 제기할 수는 없다는 논리로 결론은 일본의 주장과 같다. 그러나 이는 하급심 판사가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확립된 인권법 이론을 대한민국 판사가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 인권법은 징용청구권과 같이 개인의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청구권만큼은 국가가 함부로 포기하거나 상대국과 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 강제규범의 후일 판단에 구속력이 있어야 반인도적 범죄, 인권의 문제에 저촉될 수 있는 행위를 함부로 못하게 되는 것이고 소급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강제징용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제까지 선고된 대법원 판결도 이를 명확히 했다. 일본군과 경찰의 통제 아래 피해자들은 자유의 박탈, 구타와 굶주림, 장시간 가혹한 노동 등 노예와 같은 강제수용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했다”며 “이에 일본 정부와 긴밀한 범죄공동체를 이룬 일본 기업이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자행한 침해의 정도로 비춰 모두 반인도 범죄 또는 노예금지와 관련한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을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용청구권은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아니므로 소권도 살아 있는 것이다. 설령 소권 소멸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합의는 현재 무효인 것”이라며 “김양호 판사의 판단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으로 무효에 해당함을 간과한 것이다.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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