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깨달은 일상의 행복 주디 스펜스
모험을 즐기던 사진작가 남편
이제 그는 보행 보조기에 앉아 지낸다
어느날 그가 사진을 꺼내들고 말했다
"오늘은 우리 여기 가볼래요"
다시 찾아간 레드록 캐니언에서
결혼 전 새긴 사랑의 징표를 찾았다
내삶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나는 행복하다
모험을 즐기던 사진작가 남편
이제 그는 보행 보조기에 앉아 지낸다
어느날 그가 사진을 꺼내들고 말했다
"오늘은 우리 여기 가볼래요"
다시 찾아간 레드록 캐니언에서
결혼 전 새긴 사랑의 징표를 찾았다
내삶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나는 행복하다
나는 약을 분류하는 일로 돌아갔다. 혈압약, 당뇨약, 6년 전 뇌졸중 이후로 먹는 혈액희석제, 전립샘약, 비타민, 프로바이오틱. 조의 고관절 통증 때문에 의사에게 전화해야 했다. 남편은 잘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전화 통화는 내 몫이었다.
진료 약속이 우리가 집을 나서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요즘은 드라이브스루 패스트푸드점을 다녀오는 정도면 신나는 일로 통했다.
'우리가 80대라는 건 알지만, 이게 우리에게 남겨진 전부인가요, 주님?'
나는 물었다. 일하던 시절에 남편은 직업 사진사였다.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빛이 장미 꽃잎에 내려앉는 방식,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돋이, 거미줄에서 반짝이는 이슬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는 사소한 부분이나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삶에 대한 열의가 있었다.
그런 날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코로나19로 교회도 가상 예배만 허용하면서 기대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감사할 일이 아주 많아'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훌륭하고 뛰어난 두 딸과 그 가족들, 내 건강, 조와 결혼해서 보낸 35년의 세월.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굳건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이실직고하자면 우리 관계에도 딱히 흥미로울 게 없었다. 남편은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몇 시간씩 보냈다. 나는 돌봄에 얽매였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따랐다. 조금이라도 즉흥적인 일을 마지막으로 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특히 작년은 매우 힘들었다. 조는 몇 차례 쓰러졌고, 응급실에도 다녀왔다. 폐렴을 한바탕 앓았고, 코로나19가 겁났다. 남편은 물리치료를 받는데도 점점 더 약해지고 내게 더 의존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사랑에 빠졌던 대담하고 호기심 넘치는 남자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독신 성인을 위한 성경공부 모임에서 만났다. 나는 45세였고, 이혼 17년째였다. 데이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우선순위는 딸들과 '사우스 웨스턴 벨'의 관리자라는 내 일이었다. 수업이 끝났는데 조가 내 차까지 따라와서는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소년 같으면서 모험을 좋아하는 면이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는 그날 밤에 전화해서 다음 날 저녁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저녁을 먹으며 할 얘기가 많았다. 조는 나보다 세 살 많았고, 오클라호마 주정부에서 사진사로 일하며 부업으로 결혼사진도 촬영했다. 하지만 열정을 기울이는 대상은 풍경 사진이었다.
저녁을 먹고는 공원까지 차를 몰고 갔다.
"산책하죠." 조가 말했고 옆 좌석의 카메라에 손을 뻗더니 목에 끈을 걸었다. 태양이 하늘에 나지막이 가라앉았다. 우리는 자생 수종과 덤불이 줄지어 선 길을 따라 거닐었다.
"자, 여기 봐요!" 그는 바로 옆에 있던 관목으로 몸을 굽혔다. 무엇 때문에 그리 흥분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조가 가리켰다.
"태양이 이 거미줄 위에서 빛나는 거 보여요? 아름답지 않나요?"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거미줄은 복잡하게 엉켜 있었고, 옅어지는 빛 사이로 모든 줄이 밝게 빛났다. 정말 놀라웠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가 소리를 냈다. 손도 잡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에 흐른 감정은 낭만이었고 친밀함이었다. 그와 나만 아는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 같았다. 조가 또 나가자고 했을 땐 신이 났다.
거의 모든 데이트가 야외에서 벌어지는 모험으로 숲, 호수, 협곡을 탐험했다. 도시 출신인 내게는 모든 게 새로웠다. 조는 경이로 가득 찬 세상과 하나님의 창조물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어느 토요일에 조는 레드록 캐니언까지 가자고 청했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곳이었다.
"일찌감치 출발해요. 캠프파이어에서 아침을 대접할게요."
그는 날 야영지로 데려갔고 불을 붙였다. 불씨가 남은 장작 위에 올려 둔 커피 여과기에서 커피를 따라 주더니 주철 냄비에서 베이컨과 달걀로 후닥닥 요리했다. 냄비 주변으로 불꽃이 춤췄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협곡을 하이킹했다. 나무숲 근처에서 잠시 쉬었다. 조는 나무 한 그루에 오르더니 주머니칼을 꺼냈다. 그가 나무 껍데기에 우리의 이니셜 'J&J'와 하트를 새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라면 삶이 흥미롭겠지. 확실했다. 1년 후 우리는 결혼했다.
지난 35년 동안 환상적인 모험을 아주 많이 즐겼다. 팝업 캠핑카로 국립공원, 해변, 산맥을 여행했다. 남편은 카메라로 모든 여행을 포착했다. 우리 집은 그가 찍은 사진으로 꾸몄다. 어디에서든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었다. 훨씬 더 행복했다.
약통을 닫았다.
"주디."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가고 있어요."
남편이 넘어지기라도 했나? 사무실로 급하게 갔다. 감사하게도 조는 의자에 앉아서 방금 프린트한 사진을 내밀었다. 남편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가장 좋아하는 오락거리였다.
"이거 어디인지 알겠어요?"
남편이 물었다. 단풍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산책로가 있는 풍경을 자세히 살폈다. 배경에는 절벽이 하늘까지 쭉 뻗어 있었다.
"모르겠네요."
"레드록 캐니언이에요."
가슴이 뻐근했다. 책상에 사진을 두고 남편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컴퓨터 모니터를 봤다.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 출력한 것보다 더 크고 더 생생했다. 마치 사진이 내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오늘 운전해서 레드록까지 가면 어때요?"
확신하려고 애쓰듯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나무가 옷을 갈아입는 때예요. 망원렌즈가 있으면 차에서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어요."
남편의 눈이 빛났다.
"그거 근사하겠네요."
차에 카메라 장비와 보행 보조기를 싣고 조가 조수석에 앉는 걸 도왔다. 남편은 거의 흥분으로 들떴다. 실망으로 판가름 나지 않기를 바랐다. 한 시간 후 협곡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남편이 기억하기에 바라보는 풍광이 좋은 곳이었다.
주차하고 뒷좌석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남편은 열린 창에 렌즈를 놓고 멀찍이 찍었다. 그는 골몰해서 카메라를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여기서 함께 보낸 모든 시간, 조와 함께한 삶이 언제나 모험이었던 것을 생각했다. 그런 활력과 매일 함께 발견했던 아름다움은 모두 지나가 버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
돌보는 이가 되는 데 약을 분류하고 진료 약속에 데려가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과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마련해 두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열어야 했다. 결혼생활 내내 남편이 내게 보여주던 것이다. 이제 내가 그를 위해 같은 일을 할 차례였다.
근 두 시간이 흘렀다. 돌아가야 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출구로 차를 돌렸다.
"차 좀 세워요." 남편이 말했다.
너른 콘크리트 통로가 굽이치며 숲으로 이어졌다. '연장자의 봄 산책로'라고 쓴 금속표지판 근처에는 장애인 이용 가능 표시가 있었다.
"저건 최근에 생겼네요."
남편이 말했다. 그의 눈이 반짝였을까?
"그 옆에 선 당신 사진을 찍어 줄게요."
나는 차에서 보행 보조기를 꺼냈다. 조는 날 위해서 과감히 포즈를 취했다. 차로 돌아가는 남편을 도우려 다가갔는데, 그는 산책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고 싶어요?"
남편이 물었다.
산책로로 내려갔다가 남편이 다시 걸어올 만큼 힘을 내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아닌 것 같아요, 여보."
"힘내요. 모험을 즐기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이 공중을 떠돌았다. 우리 관계에서 남편을 돌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도와주십사 하나님께 부탁드리지 않았던가? 어떻게 이 순간이 흘러가게끔 내버려 둘 수 있는가?
"그렇게 해요!"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갔다. 콘크리트 길은 평탄하고 고른 편이라 보행 보조기에 알맞았다. 속도는 다소 느긋했으나 우리가 하던 데이트 같았다. 산책로 끝에는 벤치가 있었다.
몇 분간 조용히 앉아서 새의 지저귐과 산들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었다. 행복했다. 그랬다. 이런 시기도 행복할 수 있다고 주님께서 얘기하고 계셨다. 남편의 시선은 통로 바로 옆의 나무숲에 붙박여 있었다. 그가 더 멀리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랐다. 그쪽 지면은 너무 울퉁불퉁했다.
조가 가리켰다.
"저 나무 확인해 봐요."
"어떤 거요?"
"가서 반대편을 봐요."
남편의 속셈을 궁금해하며 나무로 다가갔다.
"거기예요, 주디. 이제 돌아가 봐요."
무엇을 봐야 하지? 꼼짝할 수 없었다. 안에 'J&J'라고 쓰인 하트가 있었다.
"이게 아직도 여기 있다니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이 조각했을 때 그대로 아름답네요."
우리 사랑의 징표는 꼭 우리처럼 세월의 시험을 견뎠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변화를 이겨냈다.
벤치로 돌아와서 남편 곁에 앉았다. 손을 잡고 말했다. "사실 더 아름다웠어요."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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