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일본 징용 기업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국민정서 사이에서 1·2심과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다면서도 이를 "소송으로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이 과정에서 '조약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 방법으로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선 안 된다'는 빈협약 제27조를 수용했다. 이는 과거 1·2심 판결로 돌아간 셈이다.
일제 피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배상의 당위성을 누가 부인하겠나. 다만 국제법과 배치되는 국내법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는 있다. 위안부 배상 문제는 징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구권 협정에 따른 제약을 덜 받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은 이용수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손배소에 대해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국가면제이론에 따라 "일본 정부를 한국 사법부가 재판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전 정부 시절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하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그 결실이 뭔가. 징용 피해자들은 여전히 단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고 절규하고 있다. 그러니 문 대통령도 올해 신년 회견에서 사법부의 실효성 없는 강제집행 방식 배상 판결에 대해 "솔직히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을 법하다.
그렇다면 임기 말 문 정부는 이번 판결을 이 같은 과거사 딜레마에서 벗어날 계기로 삼아야 할 듯싶다. 여당 출신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징용피해자 배상 문제를 한·일 기업의 성금으로 해결하자는 대안을 이미 내놓았었다. 한·일 양국이 난마처럼 얽힌 과거사의 매듭을 풀기 위해 이제라도 적극적 외교적 해법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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