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고(故) 유상철 감독은 현역 시절 코뼈가 부러진 상황에서도 불굴의 투혼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큰 감동을 안겼다.
팬들에게는 투혼의 상징이었던 유 감독이지만, 축구장에서는 팔방미인의 대명사로 어느 유니폼을 입더라도 사령탑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중심에 있었던 그는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완벽하게 역할을 해냈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한일전에서 국가대표 데뷔골을 터트린 유상철은 멀티플레이어의 본보기였다.
골키퍼 빼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하나가 아닌 여러 포지션에서 K리그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원조 멀티플레이어'였고 일본 J리그에서도 사랑받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1-1 무)에서 집념의 동점골을 넣었던 그는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폴란드와의 경기에서는 결정적인 쐐기골로 역사적인 한국의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견인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일월드컵에서 멀티포지션을 강조하고 이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도 유상철이 있기에 가능했다. 강인한 체력과 준수한 수비, 여기에 킥력과 세트피스 시 위력적인 공격 능력까지 갖췄던 그는 말 그대로 '팔방미인'의 능력을 뽐냈다.
일본 매체 '사커다이제스트'는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었던 유상철을 떠올리며 "그는 골키퍼 외에 어떤 역할도 해냈던 '슈퍼 멀티 플레이어'였다"고 전했다.
그는 선수시절 막판 사실상 왼쪽 눈에 시력이 없다는 아픔을 고백하기도 했다. 유 감독은 피나는 연습과 노력을 통해 단점을 극복해냈고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유 감독은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월드컵 첫 승리를 이끈 건 물론, A매치 124경기 18득점을 기록하며 많은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큰 사랑을 받았던 유 감독은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50세.
축구 선후배 동료들은 '하늘의 별'이 된 유 감독을 추억했다. 허정무 대전시티즌 이사장은 "유 감독은 여러 포지션을 다 잘 소화하는 선수라 감독 시절 큰 힘이 됐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은 "유 감독은 잊히기엔 너무 많은 업적을 지닌 레전드"라며 "잊지 말고 오래오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현역 시절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고, 또 잘했던 유 감독은 7일 우리 곁을 떠났고,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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