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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안 하느니만 못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5 19:52

수정 2021.06.15 19:52

건보공단도 노노 갈등
억지춘향 정책의 비극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고객센터 직고용화 갈등과 관련해 건보공단 노조에 대화참여를, 고객센터 노조에 파업 중단을 요구하며 14일 강원 원주 공단 본원 로비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사진=뉴시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고객센터 직고용화 갈등과 관련해 건보공단 노조에 대화참여를, 고객센터 노조에 파업 중단을 요구하며 14일 강원 원주 공단 본원 로비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사진=뉴시스
친노조 성향의 문재인정부에서 희한한 장면이 나왔다. 공공기관에서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노·노 갈등도 모자라 최고책임자까지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 14일 강원 원주에 있는 본사에서 홀로 농성에 돌입했다.

공단 내 고객센터 노조는 센터 직원 1600명을 공단이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5일째 파업 중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산하 공단 정규직 노조는 센터직원 직고용에 반대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입장문을 내고 "고객센터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건보공단 노조는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해달라"고 말했다. 이 통에 노·노 간 밥그릇 싸움을 중재해야 할 김 이사장까지 농성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공기업의 비정규직 제로는 문 대통령의 간판 정책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도 적고 정년보장이 안돼 불안해한다.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룰에 따라 정규직을 늘린다면야 토를 달 사람이 없다. 하지만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마치 군사작전 하듯 몰아붙인 게 문제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모범이라던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보안검색원 1900명 직접 고용문제를 놓고 여전히 집안싸움이 진행 중이다. 건보공단은 인국공 사태와 판박이다.

결과는 어떤가. 문 정부 4년간(2017~2020년) 비정규직 수는 오히려 94만5000명 늘었다. 반면 정규직은 외려 24만2000명 줄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최저임금을 확 올리고, 기업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정규직 제로와 주52시간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이다. 근로자를 위한다고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근로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정규직을 무리하게 늘린 결과 신규 채용 여력도 줄어들었다. 36개 공기업은 지난해 8350명을 새로 뽑았다. 이는 전년 대비 32% 감소한 수치다. 올해 신규 채용 규모는 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애당초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격이다.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은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어서다. 정규직이 임금의 큰 몫을 가져가면 기업은 어쩔 수 없이 채용을 줄이거나 비정규직을 늘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정공법은 정규직 강성노조를 겨냥한 노동개혁이라야 마땅하다.
만만한 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비정규직을 억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전형적인 땜질 대응이다. 게다가 그 최대 피해는 결국 고용시장 밖에 있는 청년들에게 돌아간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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