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해외 제약사들이 코로나 백신을 평균 11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개발하고, 우리나라에도 공급돼 급한 불을 끄게 됐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만에 하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백신개발이 더뎠더라면, 한국의 백신 몫이 없었다면 현 상황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현재 백신접종 가속화에도 한달에 1만명 이상 신규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백신도입이 늦었다면 얼마나 수치가 뜀박질했을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경제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은 백신도입이 올해 1·4분기에서 2·4분기로 늦어지고, 확산세가 가팔라지면 국내 경제손실 규모는 최대 2088억달러(233조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지난 2월 백신접종 개시로 최악은 피해갔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전 세계적으로 인도발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미 74개국으로 퍼졌고, 영국 등에선 백신접종자들도 변이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되고 있다. 정부가 목표로 잡은 11월 집단면역까지 5개월이나 남은 것도 긴장의 고삐를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스스로 느슨해진 방역의식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범국가적으로는 팬데믹을 초래하는 감염병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백신까지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속히 갖춰야 한다. 지금처럼 해외에 백신수급을 의존해선 정기적 예방접종을 기대하긴 어렵다. 당장 내년이 걱정이다. 수천만회분 백신을 얻기 위해 다시 손을 벌려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실무추진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백신개발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원장도 코로나 백신 개발 중인 국내 기업들의 고군분투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주요 국가들은 팬데믹 초기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백신개발에 성공한 반면 국내에선 아직도 기업별로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3상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아닌 국제민간기구로부터 약 2000억원을 지원받는 게 대표적이다. 정부의 글로벌 백신허브 구상 역시 큰 그림만 있을 뿐 여전히 지원 대상과 규모 등 세부 밑그림이 빠져있다. 깨달음은 성장과 혁신의 동력이다. 다만 실천이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뤄내듯 백신 강소대국으로 가는 길도 첫걸음부터 떼는 게 우선이다. 기점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바라는 코로나 백신의 국산화가 돼야 한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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