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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광부 파업을 뮤지컬로 승화시킨'빌리 엘리어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8 18:41

수정 2021.06.28 18:41

[fn광장] 광부 파업을 뮤지컬로 승화시킨'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라는 작품이 있다. 영국 탄광촌에서 태어난 소년이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를 2005년 런던에서 동명의 뮤지컬로 각색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시킨 작품이다. 세계적인 팝가수 엘튼 존이 작곡가로 참여했다.

배경은 1980년대 영국 북부.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창인 탄광촌에서 일찍 엄마를 잃고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홀아버지와 신념이 강한 혈기왕성한 형,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사는 11살 소년 빌리 엘리어트가 주인공이다.

그는 복싱 교습소 공간을 시간대별로 나눠 쓰는 발레 레슨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자신의 숨겨진 춤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광부 집안의 아들이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를 한다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레 선생님의 노력과 빌리 자신의 열정과 재능으로 쇠락하고 있는 탄광촌에서 그는 발레리노로서의 성장의 길로 접어든다.

이 작품은 내면적으로는 빌리의 성장기가 중심이지만 그 배경에는 1980년대 영국의 실제 정치 상황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전체 에너지 생산의 75%를 석탄이 차지하면서 광산 노조 역시 막강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1984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연임하여 집권하던 시절 석탄 의존도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대처 총리는 파업에 돌입한 노조와 1년간이나 대치하면서 항복을 받아냈고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이후 석탄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양산업이 되었다.

사실 뮤지컬 무대에서 파업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는 다루기 어렵다. 게다가 이 작품에는 데모에 나선 노조원들과 이를 진압하는 무자비한 경찰과의 대치 상황도 등장한다. 하지만 과격한 장면도 유머를 머금은 유려한 대사와 두 집단의 극명한 대조를 활용한 연출로 긴장을 이완시킨다.

가령 발레 교습을 받는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방패 든 경찰들과 노조원들의 파업 현장을 양쪽에 배치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징적인 연출력을 발휘했다. 또한 안무도 정교하게 잘 추는 앙상블 배우를 위한 눈요기의 용도가 아니라 생활속의 움직임을 기승전결을 갖춘 드라마틱한 동선에 실어 보여주려는 의도로 짜여졌다.

앙상블 배우들은 때로는 곤봉과 방패를 이용한 경찰관의 춤이 되었다가 탄광촌의 주민들의 엉뚱한 발레와 어우러지며 결국은 화해와 인간애라는 작품의 주제를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1980년대 서서히 쇠락하는 영국 탄광산업이라는 '과거'와 그들 자식 세대가 힘껏 도약하는 발레라는 '미래'의 대비가 시각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초연, 2017년 재연에 이어 오는 8월 31일 세 번째 시즌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 이 작품을 처음 관람할 계획이라면 1막 마지막 장면인 '앵그리 댄스'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빌리가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오디션이 좌절되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이는 춤과 어른들의 파업 투쟁과 진압 장면이 교차된다.
빌리 역의 소년 배우의 놀라운 퍼포먼스와 현실적이면서도 뛰어난 앙상블 안무 구성으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명장면이다.

조용신 연극 뮤지컬 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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