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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뚜껑 열어두는 아내 말없이 닫아놓는 남편.. 38년차 부부'다름의 케미' [Guideposts]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9 17:03

수정 2021.06.29 19:46

크리스티 듀베리
코로나봉쇄로 집에 붙어지낸 남편과 나
손씻기부터 세척기 사용법까지 부딪쳤다
몇주쯤 지났을까 무엇인가 달라 보였다
잔소리꾼 남편이 나를 돕고 있었다
"화 안나요?" "이게 당신 모습이니까요"
나는 귀가 어두운 남편에 고함치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가 말하기 시작했다
닮은 구석 없이도 우리가 행복한 건
있는 그대로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에 사는 크리스티 듀베리(왼쪽)와 돈 듀베리는 38년을 동고동락한 부부 사이지만 성격이 서로 다르다. 남편은 성취 지향적이며 아내는 느긋하고 자율을 중시하는 성격이다. 아내는 "그 세월 내내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날 사랑한 비결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대로 서로 개성 있는, 그러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있게끔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에 사는 크리스티 듀베리(왼쪽)와 돈 듀베리는 38년을 동고동락한 부부 사이지만 성격이 서로 다르다. 남편은 성취 지향적이며 아내는 느긋하고 자율을 중시하는 성격이다. 아내는 "그 세월 내내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날 사랑한 비결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대로 서로 개성 있는, 그러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있게끔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편 돈이 부엌에 설치한 컴퓨터에서 흘끗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안 해요."

내가 식기세척기에 시리얼 그릇을 꽂아 넣으면서 아마 꼭 필요한 것보다 좀 더 힘을 줬던 모양이다.

"내가 여태껏 제대로 넣지 않았다는 걸 몰랐네요. 알게 해줘서 고마워요."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남편을 뒷마당에 묻으면서 남은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2주차에 불과했다. 집에 마련한 내 사무실로 급히 도망쳐서 기도했다.


'주님, 이제는 식기세척기예요! 제발 돈이 마음 편히 지내게 해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격리를 결코 무사히 보낼 수 없을 거예요.'

오해하지는 않기를. 돈과 나는 38년 동안 결혼생활을 이어왔다. 행복하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전역한 해병대이자 전문 회계사인 남편은 스프레드시트가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예술을 좋아하며, 예산의 수지를 맞추는 일보다 그림 그리기에 더 끌린다. 이베이에서 수집품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요즘 들어 난청일지도 모르는 남편은 새벽같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는 나팔 기병의 진격을 흉내 내면서 날 깨우곤 했다. 나는 커피를 어디에 숨겼는지 말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남편이 그 습관을 버리게 했다. 남편에게 카페인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상 그의 두뇌는 일어난 순간부터 과열 상태다. 나는 오전 7시45분에 남편이 내 볼에 입을 맞추고 출근할 때까지 침대에 있었다. 그러고 난 뒤 더듬거리며 냉장고까지 가서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잡은 다음, 침침한 침묵에 잠긴 소파에서 쭉 들이켰다.

우리가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는 그가 나와 다르다는 게 '좋았다'. 잘 정돈돼 보였다. 그간 만나던 목표 없는 남자들 같지 않았다. 우리는 내가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그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예술품 가게에서 일하던 시절에 만났다. 돈은 부모님의 장부 관리자였다. 하루는 비품창고에 갔는데, 그곳 역시 돈의 일터였다. 집에 돌아오니 돈이 데이트를 청하며 자동응답기에 남긴 메시지가 있었다.

그의 A유형 성격(성취 지향적인 성격)은 나의 B유형 성격(느긋하고 자율을 중시하는 성격)과 균형이 맞았다. 신혼 때 나는 오클라호마 일대의 랜드마크를 그리면서 명성을 쌓았다. 남편은 내 그림을 액자에 넣어주고 전시회 준비를 도왔다. 나중에는 다른 열정을 추구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당신은 이야기를 써야 해요. 아주 잘해 낼 거예요."

우리 부부는 둘 다 상근으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수십년 전이다. 펜을 들자 글쓰기는 내가 남편의 지지와 함께 걸어온 흥미롭고 새로운 많은 길 중에 하나라는 것이 입증됐다.

지난 15년 동안은 집에서 일하면서 이베이 사업을 운영하고 글을 썼다. 아이들은 다 컸기에 집을 독점하는 데 익숙해졌다. 까탈스러운 앵무새 태즈와 충성스러운 개 스쿠비를 빼면 말이다. 남편의 은퇴가 어렴풋하게 가까워지자 나는 걱정스러웠다.

남편이 종일 집에 있으면 우리의 타고난 차이가 충돌할까? 아마 서로의 일을 방해하지 않은 게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이었을 거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 변해야 한다는 점이 걱정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다. 남편의 고용주는 수치가 호전될 때까지 나이 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나는 감사했다. 남편이 안전하기를 바랐다. 앞으로 있을 우리 은퇴계획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재택 첫번째 월요일 아침에 남편은 마당 계획을 늘어놓았다.

"두고 봐요, 크리스티. 나는 앞으로…."

아직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내 뇌 언저리에 남편의 말이 어지러이 오갔다. 들려오는 건 그저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와와와'뿐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아침 에너지를 좀 쓸 수 있도록 외투용 옷장에 넣고 문을 닫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남편 혼자 말이다.

어찌어찌해서 봉쇄 1주차를 넘겼다. 내가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는 방식을 돈이 비평하고, 내가 재택 사무실로 피신하는 것으로 2주차가 시작됐다.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다시 채우고 싶은 절박한 갈망이 결국 나를 다시 부엌으로 몰았다. 남편은 사소한 실랑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새로운 스프레드시트를 하나씩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이 열은 우리가 이미 쓴 거고, 이 열은 우리가 써야 할 거고, 이 열은…."

며칠 후에는 남편이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다시 넣고 있음을 알았다. 군인의 딱 부러지는 정확함으로 우리 접시가 죄다 완벽히 열 맞춰 있었는데 마치 훈련 교관에게 점검받는 해병대원 같았다. 짜증스럽게도 그렇게 하니까 식기세척기에 더 많은 접시가 '들어맞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인정했다는 건 아니다.

머리를 식혀야 한다는 걸 알았다. 돈은 그저 그답게 있을 뿐이고,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머리에서 그 생각을 떨쳐냈다. 우리는 단둘이 조금 과하게 있는 것보다 더 힘든 일들도 헤쳐왔다.

다음 날 아침에는 노년층을 위한 시간에 맞춰 월마트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식료품을 찾아왔다. 그러고 나서 부엌 싱크대에서 같이 손을 씻었다.

"내가 손 닦는 방법을 당신도 시도해 봐요."

남편의 말에 나는 눈을 뒤룩거렸다.

"보여요? 내 고체비누가 당신 액체비누보다 거품이 훨씬 잘 나잖아요. 손가락 사이를 비누로 더 열심히 문지르는 게 중요해요."

두통이 오는 게 느껴졌다.

"잠시 누워 있을게요. 아스피린 좀 갖다 줄래요?"

천장을 응시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주님, 주님께서는 돈이 변하도록 전혀 도와주시지 않네요. 어떻게 하면 제가 결혼 39주년을 맞을 수 있을까요?'

남편이 다가와서 산더미 같은 냅킨을 건넸다.

"당신 보청기 안 끼고 있죠, 그렇죠?"

아스피린이 없다는 걸 한탄하는 동시에 이불을 뒤집어쓰며 물었다. 하나님께서도 보청기가 필요하실까?

그 후 봉쇄 2주가 더 흐르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알아차렸다. 아니면 내가 그걸 알아차린 게 이상한지도 모른다. 나는 남편이 가까이 있을 때 더 생산적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물건을 잘못 두고 그것들을 찾느라 애쓰면서 시간을 버렸다. 텀블러, 안경, 열쇠 등 뭐든지 그랬다.

"당신 안경을 닦아뒀어요."

돈은 없어졌던 안경을 책상에 올려두며 말했다.

"여기 당신 텀블러에 신선한 얼음이랑 다이어트 콜라를 채웠어요."

어느 날 오후에는 욕실을 지나가다가 남편이 치약 뚜껑을 돌려서 닫는 모습을 보았다.

'오, 지긋지긋해!'

나는 뚜껑 닫는 걸 잊었다. 신혼 때 그게 얼마나 돈을 괴롭혔는지 알고 있었다.

"왜 이제는 내가 치약 뚜껑을 열어둬도 화내지 않는 거예요?"

문간에 서서 물었다.

"그게 크리스티다운 거니까요. 당신은 변하지 않을 거고, 나는 당신 그대로를 사랑하니까."

남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놀라 자빠질 뻔했다.

35년쯤 전에 지금처럼 그 자리에 서 있던 남편을 그려 보았다. 내가 욕실에서 나온 다음 치약 뚜껑을 닫는 모습 말이다. 매일같이 그랬다. 그는 내 결함까지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지점에 이른 게 분명했다.

글쎄, 만약 남편이 할 수 있다면….

스쿠비와 나는 돈이 매일 사무실에 가서 우편물과 일거리를 챙겨 오는 일에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내 불만이 악화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물 만난 물고기 같은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사이 돈은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베이 사업과 집필에 쏟아붓는지 몸소 알게 되면서 집안일을 더 많이 도왔다. 우리는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흉내 내느라 새로운 조리법을 찾아내면서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이 딥 디시 파이(높이가 높은 접시에 구워 낸 파이)는 피체리아 우노(피자 전문 레스토랑 체인)만큼 맛있네요."

돈은 세 번째 조각에 달려들며 말했다.

남편에게 물어볼 게 있을 때 복도 안쪽으로 소리치는 건 그만뒀다. 그가 내 말을 못 듣는다는 걸 알았다. 그 대신 부엌까지 걸어가서 마주 보고 얘기했다.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속은 훨씬 덜 타들어 갔다. 마침내 돈의 고용주가 고참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돌아와 달라고 요청했다. 기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쿠비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서도 스쿠비는 수많은 아침을 현관에 서 있었다. 돈의 우편물을 챙기러 가는 가족 외출을 준비한 채로 말이다.

나는 결혼의 진실을 찾았다. 남편이 좀 더 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남편처럼 내가 좀 더 받아들여야 했다. 그 세월 내내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날 사랑한 비결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대로 서로 개성 있는 (그러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존재로 있게끔 두었던 거다. 남편이 은퇴하면 또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잘 지낼 거다. 심지어 남편이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게 할지도 모른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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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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