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
수술실CCTV 의무화 추진 소회
[파이낸셜뉴스] 환자는 의료진에게 생명을 맡긴다. 의료진이 자신의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뢰를 배신하는 이들이 있다.
수술실CCTV 의무화 추진 소회
의료범죄가 끊이질 않는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수술실에서 범죄가 발생한다. 환자 동의 없이 의사를 바꾸고, 심지어는 무자격자가 환자 몸에 칼을 댄다. 성추행과 환자 조롱도 빈번하다.
수술실CCTV 같은 환자 중심 의료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수술실CCTV 의무화’의 주역이다. 전국 최초로 공공의료원에 CCTV를 설치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공모를 받아 민간병원까지 설치·운영을 확대했다. 2021년 오늘 국회에서 수술실CCTV 의무화가 논의되는 배경엔, 경기도가 쌓아온 운영실적이 바탕이 됐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달 29일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김기자의 토요일'에선 지난 기사에서 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한다.
“의료진 선의에만 기대기 어려워”
전국 공공의료원 중 처음으로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된 곳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이다. 2018년 경기도는 안성병원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이듬해 도내 모든 공공병원으로 수술실CCTV 정책을 확대했다. 수술실은 물론 신생아실에도 수술실CCTV가 달렸다. 도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큰 몫을 했다.
이재명 지사는 “수술 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소중한 내 몸과 건강, 생명에 관한 문제로 불안한 건 당연하다”며 “환자가 요구할 경우 수술 과정에서 고의적인 위법행위가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가 수술실CCTV법을 더욱 강조하게 된 건 민간병원 2곳의 운영실적 때문이다. A병원에선 CCTV 촬영 동의율이 81%(동의 422건·수술 521건)에 달했지만, B병원에서는 1.3%(5건·390건)로 집계됐다. 공모를 받아 동일하게 진행했음에도 운영실적이 엇갈린 것이다. B병원의 경우 병원장은 설치에 동의했지만 의료진 상당수가 수술실CCTV 설치를 거부한 게 저조한 동의율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는 “병원장의 의지가 있더라도 의사들 서로 눈치만 보는 등 병원 자율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점과 의료진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수술실 CCTV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수술실 CCTV 운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의료소송... CCTV가 평행점
의료소송은 고도의 전문적 영역이다. 십여 년 경력의 변호사들도 병원을 상대로 하는 의료소송에서 승소하기 어렵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만큼 환자가 패소하는 비율도 높다. 가장 큰 이유는 ‘증거 확보의 어려움’이다. 소송 기간도 수년이 걸린다. 의료소송이 환자나 유가족들의 삶을 망가뜨린다는 지적이 계속된 이유다.
이 지사는 “의료사고 발생 시 모든 자료는 의료진에게 있고 너무 전문적이어서 환자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라며 “의료분쟁 시 자료를 임의로 파기하거나 삭제하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맹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CCTV 설치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환자의 근거 없는 민원을 근절시킬 수 있고 의료분쟁 시 투입되는 장기간·고비용의 사회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의원님들이 깊이 공감하고 움직여 주시길 기대한다”고 국회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격렬한 반대에도 “CCTV, 신뢰 향상의 단초”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반대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수술실CCTV 의무화가 의료계 기득권과의 싸움이란 시선도 많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의료진이 위험 수술을 기피하게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수술실 CCTV가 의료진 신뢰를 회복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지사의 판단이다. 이 지사는 “고의적인 불법 의료행위를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어린이집 CCTV가 소극 보육을 유발하지 않는 것처럼 수술실 CCTV는 오히려 양심적이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대다수 의료진들에 대해 국민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망 분리와 암호화, 접근인원 최소화, 단계별 책임자 지정, 기간 경과 후 파기 등 예방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수술실 안에 CCTV를 다는 것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외국에서 이슈가 된 건 의료사고의 입증 필요성 때문이었지만, 국내에서는 대리수술 등 범죄행위 때문이었다”며 “고의 불법 의료행위가 있어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의료인에 대한 규제는 지난 2000년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대폭 약해졌다. 의료인의 면허취소 사유를 대폭 완화한 게 골자인데, 이로 인해 일반 형법위반 사유로는 처벌을 받아도 면허에 영향이 없고 면허정지를 당해도 다시 개업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평가다. 이 지사는 “CCTV 도입 논의도 불법 의료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시작됐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짚었다.
“CCTV 설치 여론 높아졌다... 관철해야”
의료범죄가 계속되면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비판이 쏠리기도 했다. 불법 행위를 저지른 의료진에게 강력한 처분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도 이를 해결하고자 나서는 의원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지사는 “수술실CCTV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국민”이라며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존재인 국회의원은 반대가 있더라도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관철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의적 불법의료행위가 발생하는 데에는 법적 처분이 경미한 점도 영향을 줬다”며 “현행법상 의료인 과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규정이 없고, 동영상이나 자료 등이 없을 경우 의료종사자들에 대한 행정처분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지방정부의 역할은 불법행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며, 그 시작은 CCTV 설치”라며 “기록 조작을 예방하는 등 위법행위를 차단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의·폐기의 반복.. 이 지사 “당론 돼야”
수술실CCTV 법안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1년 째 계류 중에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남국, 안규백 의원이 CCTV 법제화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논의 없이 폐기됐다. 이 지사는 이 ‘반복’을 의료진과 환자 양측의 의견을 수렴한 ‘사회적 논의의 과정’으로 정의하며 이젠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지금까지 국회가 공감대 형상과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국민의 뜻을 받들 차례”라며 “토론과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이지만 국민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지금이라도 수술실 CCTV 법안의 당론 채택과 신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진 입장에서는 수술실 CCTV가 반가울리 없다는 것도 잘 안다”면서도 “이례적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다시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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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wan@fnnews.com 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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