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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시평]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30 18:35

수정 2021.06.30 18:35

[fn시평]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몇 년 전의 일이다. 지방에 있는 연수원에 여성정책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청중은 막 공무원에 입문한 20~30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용어로 이야기하면 이남자들이었는데 강의 주제에 관한 관심이 없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강의 시작 전에 "우리나라 정부가 실시하는 정책 중에 여성할당제가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다. 할당제가 많은 줄 뻔히 아는데 왜 물어보느냐는 눈빛이 대다수였다. 어찌 되었든 여성할당제라는 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많아요." 웅성웅성 답변한다.
"그럼 있다면 무엇인지 답변해 보세요"라고 추가 질문했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엄밀한 의미의 여성할당제는 없기 때문이다. 여성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엄청난 오해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양성평등 채용목표제와 정부 위원회에 최소한 한 성의 40% 참여 목표제는 여성할당제가 아니다. 여성만이 아닌 양성을 대상으로 한다.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는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에 모두 적용되며, 한쪽 성이 30% 미만이면 30% 이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쪽 성에서 추가 합격시키는 제도이다. 특별히 여성만을 위해 여성 채용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한 성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여성이든 남성이든 바로잡자는 것이다. 실제로 운영해보니 제도 초기에 혜택받은 성은 여성이었지만 지금은 남성이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지금 실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할당은 장관 30%를 임명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공직선거법에 따른 국회나 지방의회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여성할당제를 통해 경제와 사회발전을 이루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나라도 있다.

지난 26일 끝난 제16회 제주 포럼에 참석한 프로데 술베르그 주한 노르웨이대사는 '성평등이 경제발전을 이룬다'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노르웨이는 2003년 기업 내 이사회 여성 이사 40% 할당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법이 보수당 출신의 남자 장관의 발의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당시 민간기업으로서는 이사의 일정 부분을 단시간 내에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제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평등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고 한다. 대사는 노르웨이가 유전 등 천연자원으로 부유해진 것이 아니라 성평등을 통해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필자가 대사에게 당시 그 법을 제정했을 때 역차별이나 여혐 같은 이슈가 없었냐고 물었다. 법 제정 전에는 약간의 반대는 있었지만, 법이 시행되고 여성들이 활동하면서 반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할당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할당제가 여성을 배려해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할당제 등 다양성 이슈는 여성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성장을 위한 생존전략이다. 더 큰 오해는 할당제만 시행하면 모든 여성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착시현상이다. 할당제만으로는 성평등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 노르웨이 사례처럼 다양성과 포용성이 어우러져서 성평등이 사회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OECD 정책분석관으로 근무했던 세종대 최안나 행정학과 교수도 유럽 북구 국가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OECD 대부분 국가가 성 다양성과 포용성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도 할당제에 대한 소모적인 찬반 논쟁을 뛰어넘어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조직과 사회의 주요 전략으로 채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경제발전과 저출산 문제를 비롯한 우리 사회 당면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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