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왕국서 콘텐츠제국을 만든 3인의 CEO
부활을 완수한 소니,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방향 제시한 이데이 CEO
전자왕국 소니 몰락 부채질
구원투수로 선발된 히라이 CEO
1만명 줄이고 노트북·PC 철수
엔터테인먼트를 핵심사업으로
소니그룹을 만든 요시다 CEO
게임·영화·음악사업 통해
콘텐츠 중심 소니제국 꿈꿔
부활을 완수한 소니,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방향 제시한 이데이 CEO
전자왕국 소니 몰락 부채질
구원투수로 선발된 히라이 CEO
1만명 줄이고 노트북·PC 철수
엔터테인먼트를 핵심사업으로
소니그룹을 만든 요시다 CEO
게임·영화·음악사업 통해
콘텐츠 중심 소니제국 꿈꿔
지난 5월 26일, 온라인으로 열린 '소니그룹'의 경영방침설명회. 향후 3년간 소니의 중기계획(2021~2024년)이 발표되는 자리였다.
재무통 출신으로 취임 당시만 해도 '가장 소니답지 않은 지루한 경영자'로 불렸던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사장 겸 회장(2019년 취임)의 발언 하나하나에 시장 관계자, 거래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에 창사 이래 사상 첫 1조엔(약 10조원) 순이익 달성으로, 명실상부 '소니의 부활'을 완수한 그였기에 중기 실적 목표에 대한 기대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었다.
이날 그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게임 등을 중심으로 현재 1억6000만 명인 고객기반을 10억 명으로 확대하겠다"였다. '10억 명'을 견줄 수 있는 글로벌 서비스로는 유료 회원 2억여명인 미국의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정도다. 한 마디로 '넷플릭스 5개'를 합친 것과 같은 고객 기반을 거느리겠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요시다 회장이 게임,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축으로 사실상 제2 창업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창업(1946년)이래 전자사업을 기업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소니의 간판사업이 이제는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다. 그룹의 성장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필두로,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한국에서조차 흥행돌풍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4차 산업의 '눈'인 이미지 센서, 전기차 '비전 S'까지 라인업 돼 있다. 1980년대 워크맨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소니'가 된 것이다.
고도성장기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으나 삼성전자에 밀리고, 애플에 밀린 소니, '부활을 완수'하기까지 지난 10년간 소니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니그룹의 수익 50~60%는 게임 및 네크워크 서비스, 음악, 영화다. 전자산업은 이제 20%정도다. 1990년대 전체 수익의 80%, 2000년대 69%를 차지했던 전자산업과 엔터테인먼트가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10년에 걸친 '구조개혁'의 결과물이었다. 인터넷 시대로 가야 한다고 봤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의 방향설정, 이후 히라이 가즈오회장(2012년~2019년), 요시다 겐이치로 회장(2019년~현재), 두 사람의 '이인삼각 경기'의 산물이었다.
특히, 마케팅 분야 출신으로 오랜 미국생활 경험 덕에 세계시장 흐름에 감각이 있었던 히라이와 치밀한 재무통 전략가 요시다의 조합이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였다.
소니가 몰락의 기로에 선 2012년 사장 겸 회장에 취임한 히라이 가즈오는 전자왕국 소니에서도 비주류인 소니뮤직, 소니게임 출신이다.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소니 경영진들은 밑에서 올리는 아이디어를 채택할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 취임 직후엔 주가가 32년 만에 1000엔 밑으로 떨어졌으며, '소니다움'이란 상품도 94년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 외에는 없었다. 취임 3년 차에는 소니 창사 이래 사상 첫 무배당을 실시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히라이가 2013년 9월 계열사 소넷(인터넷 접속서비스 기업)사장이었던 요시다 겐이치로를 불러들였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전부 맡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요시다는 이데이 노부유키 전 회장의 '애제자'이자 그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인물로 소니의 대표적 재무통이었다. 히라이 회장이 자신보다 1살 위인 요시다를 눈여겨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룹의 비핵심 계열사 사장인 그는 한 달에 한 번 히라이 회장 앞에서 보고 할 때마다 불편할 정도로 냉정하게 소니의 현 상황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쇠락기 소니 내부에서는 그 누구도 의욕적으로 말하려 들지 않았다. "이견이 필요하다"(히라이), "솔직하게 말하겠다"(요시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소니그룹의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도쿄 시나가와 '본사 20층'에 복귀한 요시다는 "소니를 바꿀 수 있다. 소니는 변할 것이다"고 선언하며, 2013년 3월 1차 구조개혁의 3개년 중기계획을 발표했다.
칼질의 대상은 주로 7년간 누적적자가 1조엔 이상이었던 전자사업이었다. 인원 약 1만명 감축, 비핵심 자산 매각, 노트북 등 PC사업 철수, TV사업 및 영상 음악 사업 분사화 등이 단행됐다.
"방향성을 세우면, 인사를 하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진다." 요시다의 기본 방침은 매우 단순명료했다. 두 사람은 소니 구조개혁에 대해 입버릇처럼 "질질 끌지 않겠다"고 했다. 단호함은 속도감을 배가시켰다. 요시다는 경영진들에게 주문했다. "차세대에는 보다 나은 소니를 물려주자." 좋은 시절 소니에 들어와서, 혜택을 입었다면 어려운 시기 책임감을 갖고 구조개혁에 동참해 달라는 내부를 향한 메시지였다.
히라이는 구조개혁과 동시에 회장 직속으로 신사업 조직을 신설했다. 2014년 소니 본사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신규사업 오디션을 열었다. 창업정신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채택되면 제안자가 책임지고 상품화하도록, 회사가 인재, 자금, 경영노하우 등을 측면지원해주는 시스템이다. 당초 300명 정도로 예상했던 참석자는 예상을 뛰어넘어 1200명이 모였고, 신규 아이디어는 200건이 접수됐다. 소니 조직에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였다.
히라이는 그러면서도 이미지 센서 사업, 플레이스테이션, 영화, 음악, 게임 등에는 거액의 투자를 집중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소니 전략의 주요 요소이자 성장의 핵심 엔진이다." 히라이의 선언에 "TV는 곧 소니의 정체성"이라고 여긴 소니의 원로들이 그의 면전에 놓고, 퇴진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히라이표' 구조개혁, 선택과 집중 전략은 계속됐다.
히라이와 요시다는 각 사업을 3가지로 나뉘었다. 적극적 투자 영역인 △성장견인 영역(디바이스, 게임 및 네트워크, 영화, 음악), 대규모 투자대신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안정적 수익 영역(디지털 카메라, 방송기기, 비디오, 사운드), △리크스 관리 영역(TV, 모바일 등)이다. 소니의 전통 사업이라 할지라도 수익을 못 내면 칼같이 정리했다.
요시다는 2018년 사장 취임에 이어 2019년 회장직에 오르며 히라이에게 바통을 넘겨받았다. "가장 소니답지 않는 지루한 인사"라는 악평이 붙었으나, 불과 2년 만에 소니부활극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게임 산업이 날개를 달았다. 게임산업의 영업이익은 1년 만에 1000억엔 이상 증가하며, 전체 영업이익에서 35%로 비중이 증가했다. 음악과 금융도 그룹의 안정적 기반이 됐다. 금융·음악 부문도 각각 1000억엔 이상의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최종 순이익 1조엔 달성은 10년간 쌓아올린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소니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존재의 목적에 대해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졌다.
소니의 정체성, 전자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이질적 두 산업 간 논리적 고리 구축, 향후 나아가야 할 사업방향에 대한 고민이었다. 상호 이질적인 '전자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융합'은 과거 이데이 전 회장 시절부터 과제로 여겨온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들이 소니에 전자산업을 정리하라고 압박을 가했던 일도 있었다.
요시다 회장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크리에이티브 엔터테인먼트'로 정체성을 다듬어 가면서, 그룹의 중심을 콘텐츠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소니는 2024년 3월까지의 3년간의 중기 계획상, 2조엔 이상을 게임 등 전략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다. 요시다 회장의 '10억명의 고객 기반'을 놓고, 시장에서는 미국의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아마존)처럼 거대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으나, 요시다는 반드시 꼭 플랫폼 시장에 진출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게임과 영화, 음악 사업을 모두 가진 업체로서, 컨텐츠 분야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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