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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재료’ 힐링 한끼로 도시인들에게 위로를…나물 뜯은 할머니 지갑도 두둑해져서 더 좋죠 [젊은 그들, MZ세대를 만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20 18:04

수정 2021.07.20 18:04

<5> ‘집밥’으로 농촌-도시 잇는 ‘소녀방앗간’ 김민영 대표
시골서 맛본 ‘집밥’ 힐링 경험 살려
지역 농산물로 요리하는 밥집 창업
7년만에 백화점 등에 6개 직영매장
‘농산물 전달 유통회사’로 정의내려
식당·온라인몰·도시락 등으로 연결
"농가소득 등 사회적가치 유지 중요"
‘청정재료’ 힐링 한끼로 도시인들에게 위로를…나물 뜯은 할머니 지갑도 두둑해져서 더 좋죠 [젊은 그들, MZ세대를 만나다]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30)는 지난해 5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청년 봉사단체인 '코리아레거시커미티'였다. 홈리스를 위한 도시락 150개를 함께 제작해줄 업체를 찾는다고 했다. 코로나19 탓에 홈리스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기억났다. 김 대표는 흔쾌히 수락했다. 수익이 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해가 나지도 않았다. 식재료 비용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소녀방앗간도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급감한 상황이었다. 농산물을 보내주는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매장을 일궈올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서울 어르신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시작한 '150개 도시락'은 곧 1만개 도시락 기부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캠페인을 시작한 뒤 배달의민족에서도 연락이 왔다. '방학 도시락' 사업을 같이하자고 했다. 방학 때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겨울 500명의 아이들에게 주 2회씩 총 7000번의 건강한 집밥을 보냈다.

'집밥'으로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소녀방앗간'은 김민영 대표(위 사진)가 취업준비생 시절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준 고봉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한 사회적 기업이다. 김 대표가 지역 어르신들이 보내준 식자재로 만든 소녀방앗간 대표 메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집밥'으로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소녀방앗간'은 김민영 대표(위 사진)가 취업준비생 시절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준 고봉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한 사회적 기업이다. 김 대표가 지역 어르신들이 보내준 식자재로 만든 소녀방앗간 대표 메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소녀방앗간이 내놓는 모든 음식은 발효간장, 발효청 등으로 맛을 낸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다. 자극적인 맛에 길든 아이들이 좋아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아이들은 '집밥 같아서 좋았다' '엄마가 해준 밥 같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올 여름방학에도 아이들에게 집밥을 보내게 됐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도시락 사업이었는데 거꾸로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매장 판매가 급감했다. 케이터링 매출은 아예 제로(0)에 수렴했다.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던 그가 힘을 낸 계기였다.

■지역 농산물로 농가와 도시를 잇다

소녀방앗간은 2014년 성수동 1호점을 오픈한 뒤 현재 6호점까지 늘어났다.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키운 농산물을 받아 건강한 집밥을 내놓는다. 케이터링, 도시락 사업을 통해 음식을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식재료도 판매한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소녀방앗간 6호점에서 만난 김민영 대표는 소녀방앗간을 "지역의 농산물을 서울의 도시 소비자에게 다양한 형태로 전달하는 농산물 유통회사"라고 정의했다.

그는 "유통마진만 남기고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녀방앗간은 농산물을 한 번 더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자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며 "성수동에서 처음 시작한 소녀방앗간 1호점도 지역 식재료를 직접 맛보여드릴 수 있는 쇼케이싱 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소녀방앗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경북 청송에서 어르신들이 내어준 '집밥'이었다. 2년간 치열하게 일했던 회사를 그만둔 뒤 내려간 곳이었다. 시골에서 직접 키운 농산물로 만든 집밥은 어떤 음식보다 맛났다. 고봉밥을 뚝딱 비워냈다. 건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만큼 마음도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 마음을 전한 농산물은 헐값에 팔려나가고 있었다. 농가 소득도 들쭉날쭉했다.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농가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도시에는 건강한 식재료를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다.

■2주 만에 만들어지는 공장식 된장은 NO

2014년 시작한 소녀방앗간은 7년 만에 6개 매장으로 늘어났다. 외식업 트렌드는 보통 5년이다. 한 브랜드가 5년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 게다가 입점이 쉽지 않은 백화점과 대형쇼핑몰에 전체 매장의 절반인 3개점이 들어가 있다. 집밥과 백화점은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감사하게도 먼저 입점을 제안해주셨다"면서 "(입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새로운 매장을 열면 식재료를 더 사용할 수 있어서 농가 소득이 올라가고, 그만큼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며 "재무적인 가치만 생각했다면 오히려 대형몰 입점을 선택하지 않고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가게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6개 매장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칫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회사의 지향점이 흔들릴까봐서다.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보다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꾸려나갈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소녀방앗간은 이윤만 생각했다면 사용할 수 없는 비싼 식재료를 쓴다. 된장이 대표적이다. 지역에서 직접 1년 이상 발효한 것을 쓴다. 공장에서 제조하는 된장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공장식 된장의 대다수는 중국산 콩을 사용해 1~2주 만에 완성된다. 직영 방식을 포기하고 무리하게 확장하면 이 같은 가치를 지켜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다.

김 대표는 "외식업에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중국산을 쓰면서 국내 농산물이 소외당하고 있다"며 "국내 농산물의 판로를 만들겠다고 나온 청년들인데 비용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맛과 가치를 함께 담은 음식

소녀방앗간이 6호점까지 매장을 내면서 7년간 생존해온 비결에는 회사의 사회적 가치에 공감해준 고객들 몫이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철저한 품질 관리와 회사의 가치를 담은 브랜딩에 힘쓴 결과이기도 하다.

외식업의 세계는 냉혹하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해 매장을 찾는 고객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고객도 만족시켜야 한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찾는 대형몰 매장은 더욱 그렇다. 쇼핑하러 왔다가 적당한 식당을 찾아 끼니를 때우려는 고객에게 맛과 가치를 모두 전해야 한다.

김 대표는 사업 시작 4년차에 현장운영 워크북을 만들었다. 하루 단위, 보름 단위, 월 단위 평가 양식을 담았다. 김 대표가 고민해 만든 현장 운영 관리시스템이다. 매장 직원들이 하루를 돌아보며 잘된 점과 부족했던 점 등을 적는다. 보름마다 모여 중간점검 회의를 연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다.

메뉴마다 준비하는 과정과 상차림 하는 방법도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 설명해뒀다. 6개 매장에서 동일한 맛과 상차림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현장 직원이 음식을 내면서 손님에게 전할 먹는 방법과 식재료 설명 멘트도 넣어뒀다. 예를 들어 산나물밥의 경우 현장 직원들은 아래와 같이 안내한다.

"오늘 산나물밥은 취나물과 어수리나물로 밥을 지었습니다. 직접 짜온 들기름과 재래식 간장으로 살짝 간이 되어있는데 드셔보시고 간이 부족하시면 함께 준비해드리는 들기름 간장양념으로 간을 더해드시면 됩니다."

이런 김 대표에게 주변 사람들은 '밥집 하는 데 뭐 그렇게 유별나게 하느냐'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정성 들여 농산물을 키우신 어르신들의 땀과 매일 새벽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류팀의 노고, 매일 성실하게 밥을 짓는 조리팀의 노력이 모두 담긴 한 상"이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맛있게 드세요' 정도만 말하면서 서빙을 하면, 그 순간 그 가치가 사라진다. 마지막 단계에서 소녀방앗간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라벨링"이라고 설명했다.

■해썹인증 준비…가공식품 판매도 진출

소녀방앗간은 총 네 가지 방식으로 지역 농산물과 소비자를 연결한다. 식당, 온라인몰, 케이터링, 도시락이다. 지역 농산물이 예상보다 덜 생산되거나 더 생산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 구조를 갖추는 데 4년이 걸렸다.

김 대표는 "매일 만드는 반찬이 다르다"며 "예상보다 많이 생산된 농산물은 반찬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적게 생산된 농산물은 케이터링이나 도시락 쪽으로 돌린다"며 "케이터링은 50명 또는 100명의 작은 단위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역 농산물을 소개할 강력한 플랫폼을 하나 더 마련하고 있다.
지역 식재료로 가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유통하려 한다. 이를 위해 내년 해썹(HACCP) 인증을 목표로 가공시설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지난 5년간 외식업을 플랫폼 삼아 지역과 도시를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 5년은 지역 농산물 유통 플랫폼이라는 지향점에 맞게 외식업 이외의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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