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신상 비공개'로 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5일 만에 기존 입장을 바꾼 경찰. 결국 경찰 스스로가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경찰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정보를 비공개하기로 해 놓고 불과 닷새 만에 기존 입장을 뒤엎었다.
2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제주동부경찰서는 지난 20일 이번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피의자들의 신상정보 공개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법률상 요건에 해당하는지 살펴본 뒤 결정하겠다"며 "현재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피의자의 신상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경찰은 법률상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 피의자에 한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 의결을 거쳐 얼굴과 이름, 나이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검토를 마친 제주경찰청은 브리핑 다음날인 지난 21일 취재진에 '법정 요건 불충족으로 심의위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범행이 잔인하지 않은 데다 공공의 이익 보다 피의자들의 가족 등이 당할 2차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사흘 뒤인 24일 갑자기 취재진에 '절차에 따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하겠다'는 정반대 입장을 밝혔다.
실제 경찰의 신상정보 비공개 결정이 알려진 뒤 경찰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모든 법정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는 사건이고, 경찰이 심의위 의결 없이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관련 국민청원에도 2만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결국 26일 회의를 열게 된 심의위는 불과 닷새 전 경찰의 비공개 결정을 정면으로 뒤엎는 공개 결정을 내렸다.
심의위는 "피의자들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하고 범행도구를 구입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임이 확인됐고, 성인 2명이 합동해 중학생인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했으며, 그 결과가 중대할 뿐 아니라 피의자들이 범행을 자백하는 등 증거가 충분하다"며 "피의자들의 인권과 피의자들의 가족, 주변인들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등 비공개 사유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했으나 국민의 알 권리 존중, 재범 방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등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당한 우려감을 표했다. 한 경찰행정학 교수는 "처음에 자기들끼리 뚝딱뚝딱 내렸던 결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경찰 스스로 부랴부랴 인정한 것"이라며 "이는 경찰의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한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경찰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중할 수 밖에 없는 문제라는 걸 이해하더라도 절차상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심의위 의결을 거치는 것을 우선적으로,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시스템 보완이 시급하다"고 했다.
경찰은 이번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대한 후속조치로 별도의 피의자 가족보호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피의자들의 가족 등 주변인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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