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3대 국회 이래 상임위원장을 여야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관행이 정착됐다. 다수당의 원내 독주와 소수당의 장외투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차원이었다. 17대 국회 이후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돌린 것도 마찬가지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이 이런 신사협정을 깬 결과를 보라. 18개 상임위원장직을 싹쓸이한 뒤 공수처법·임대차3법 등을 밀어붙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고 여야 갈등만 커졌지 않나. 여당의 4·7 서울·부산 시장 보선 참패는 그 업보였다.
그렇다면 이번 상임위원장 재배분 합의의 본질은 분명하다. 여당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입법 폭주'를 멈추라는 함의다. 그럼에도 법사위를 야당에 돌려주기로 한 데 동의한 의원들을 겨냥한 이른바 '문빠'들의 문자폭탄 세례로 여당 내부는 벌집 쑤신 분위기다. 친문 커뮤니티에는 이번 합의를 주도한 윤호중 원내대표 등을 향해 "역적"이니 "정치 사기꾼"이니 하는 육두문자 섞인 비방이 난무한다니 말이다.
그런데도 여당 내에서 이들을 설득할 리더십조차 안 보이니 문제다. 이낙연 전 대표를 뺀 다수 대선주자들이 이들의 행태를 방치하고 일부 의원들은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당 지도부는 야당에 법사위를 넘겨주기 전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언론중재법 등을 일방처리할 방침을 세웠다는 말도 들린다.
이쯤 되면 우리 정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다수당의 '승자 독식'이라는 오만한 자세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게 우리 정치사의 철칙이었다. 더 늦기 전에 여당 지도부가 조용한 다수 국민의 협치 기대에 부응할 때다. 문자폭탄 등 의회민주주의를 뒤흔드는, 강성 지지층의 일탈을 자제시키는 일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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