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혈증으로 사지마비 온 환자
의료진, 조기 패혈증 발견 못 해
과실 인정에 감정의 소견이 결정적
의료진, 조기 패혈증 발견 못 해
과실 인정에 감정의 소견이 결정적
수술은 바로 이뤄지지 못했다. A씨의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던 탓이다. 의료진은 혈압을 높이고자 했다. 다량의 수액과 사이톱신 등을 투약하면서도 우측 하복부를 통해 체내에 도관(도관배액술)을 넣었다. 농양 27cc를 빼냈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9시께 복통은 더 심해졌다. 복부 전반으로 퍼졌다. A씨는 38도 고열에 시달렸다.
20일 부산대학교병원(부산대병원)으로 옮긴 A씨의 상태는 더 악화됐다. 수술실에 들어갔지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심정지가 왔다. 같은 날 오전 10시였다. 6분 만에 심장이 다시 뛰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의료진은 1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끝에 ECMO(에크모·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산소를 공급해 다시 넣는 장치)를 달 수밖에 없었다.
난소농양 제거 수술은 26일에야 이뤄졌다. 이후 진행된 CT검사 등에서 저산소성뇌손상과 뇌경색도 관찰됐다. 난소농양에서 시작된 ‘패혈증’이 원인이었다. A씨는 2015년 11월까지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현재 완전 사지마비 상태가 됐다.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극악 확률 뚫고 ‘일부 승소’
A씨 가족의 지난한 ‘의료소송’은 2015년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 2심 판단이 최근 나왔다. A씨 가족은 극악의 확률을 이겨내고 ‘의료상 과실’을 입증해 냈다. 확보한 진료기록지와 감정의의 판단이 주효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남성민 부장판사)는 지난달 8일 A씨가 한국원자력의학원과 부산대병원을 상대로 “의료 사고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한국원자력의학원은 A씨에게 2억800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A씨 가족은 ‘의료상 과실’을 주장해 왔다. 동남권의학원이 △난소농양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패혈증이 온 점 △A씨 활력징후가 회복됐음에도 패혈증 응급수술을 하지 않은 점 △전원조치 의무를 져버린 점 등으로 배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부산대병원에 대해선 △즉시 난소농양 제거 수술을 하지 않은 점 △설명 의무를 하지 않은 점 등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의료과실 입증의 키... 감정의 소견과 진료기록
1심 재판부는 “조기에 패혈증 진단을 하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해열제를 복용했고, 분당 심박수 100회 내외의 빈맥 상태가 지속됐다는 진료기록지를 근거로 동남권의학원 의료진이 패혈증을 의심했어야만 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의료진은 당시 패혈증을 고려하지 못한 채 기립성 저혈압으로 진단했다. “감염 의심 상황에서 발생한 쇼크였고, 수액 정주에도 호전이 없어 패혈증을 의심했어야 한다"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감정의의 의견을 재판부는 인용했다.
부산대병원이 조기에 난소농양을 제거하지 않은 과실도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부산대병원 의료진은 당시 A씨 활력징후가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더라도 패혈증 증상이 발견된 뒤 시간이 흘렀고, 패혈증 원인이 된 난소농양의 근본적 제거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의사협회장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등을 근거로 “응급개복수술이 절대적 금기상황은 아니었던 점을 보면, A씨의 혈압이 정상범위 내에 있어 수술이 가능한 시점에서는 패혈증의 원인이 된 난소농양을 제거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전원조치나 설명 의무에 대해선 의료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손해배상액을 1억8200여만원으로 산정했다.
■일부 판단 엇갈려... 그 기준도 감정의 소견
2심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부산대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응급수술 여부는 환자의 전체적 상황을 고려해 임상의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감정을 의뢰했고, 감정의는 “활력징후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 혈압이 안정되자마자 수술하는 건 합병증 등 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의료진이 당시 A씨가 안정된 상태에서 수술을 계획하고 관찰한 점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의료진의 판단은 최선의 결정이었고, 의료진 과실로 수술이 지연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감정의의 의견을 근거로 제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1심이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인정한 것을 만 65세로 기준을 정해 배상액을 다시 산정했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