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SNS로 간호사 문화 개선 알리는 신현아 간호사
간호사로 겪은 고충들 만화로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세상에 알려
무시·갑질 등 의사·환자 태움도 많아
코로나병동 전문 의료진 너무 부족
파견직 수당 높아 이력 속여 지원도
간호사 처우 열악해 생긴 슬픈 현실
간호사로 겪은 고충들 만화로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세상에 알려
무시·갑질 등 의사·환자 태움도 많아
코로나병동 전문 의료진 너무 부족
파견직 수당 높아 이력 속여 지원도
간호사 처우 열악해 생긴 슬픈 현실
신현아 간호사(29)는 처음 일을 시작한 병원에서 2년6개월을 일한 뒤 퇴직했다. 대형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사명감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라면 바로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은 채 시작했던 일이었다. 퇴사를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환자들이 빠르게 처리해야 할 업무로만 느껴졌다. 세심하게 돌볼 시간이 없었다. 환자들의 갑질, 간호사 선배들과 의사들의 '태움'에 상처도 깊어졌다. 6개월 만에 퇴사 면담을 신청했다.
너무 쉽게 퇴사 얘기를 꺼낸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이 돌아왔다. "우리 땐 더 심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팀장급 간호사들은 그를 나약한 인간으로 깎아내렸고, 부모님까지 입에 올렸다. 하지만 2년을 더 버텼다. 폭언에 굴복한 건 아니었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간호사 3명이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중환자 3~4명을 담당했다. 간호사나 의료진들이 옆에 붙어 집중 관찰을 해줘야 하는 환자들이었다. 내가 관두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24개월이 훌쩍 흘렀다. 더는 퇴사를 늦춰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결심한 시점부터는 '오늘의 간호사(@today_nurse)'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간호사가 겪는 고충을 만화로 그려 올린다. 신 간호사는 "간호사 사회 자체적으로 잘못된 문화를 고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외부에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겪는 부당한 처우부터 코로나 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 느낀 문제점 등 다양한 이슈를 다뤘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코로나 중환자실 파견직 업무를 시작했다. 경기도 내 전담병원에서 코로나 중증확진자들을 돌보고 있다. 신 간호사는 "의료진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며 "이전 병원에서 느끼지 못했던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파견직을)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의사도 알아차리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에게 도움을 줄 때 뿌듯함을 느끼고 사명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하지만 불합리한 현실은 여기서도 이어졌다. 의료진이 부족한 건 똑같다. 그나마 충원되는 인력의 일부는 거짓 이력을 내세워 파견직에 지원한다고 한다.
신 간호사는 "파견직 간호사는 본원 간호사보다 수당이 높다"며 "중환자실 경험이 없는 분들이 이력을 속이고 지원한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6일 신현아 간호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가 전하는 의료계 현실을 전해 들었다. 그는 코로나 전담병원에 근무하면서 외부 만남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됐다.
―이력을 속이는 간호사들이 많은가.
▲10명 중 4명은 되는 것 같다. 중환자실 환자는 생사를 오간다. 사용법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하는 기계도 많고, 일반 병동과 쓰는 용어도 다르다. 하지만 파견직 간호사 운영 초기에는 채용 절차가 허술했다. 정식 면접 없이 전화로 몇 가지 물어보는 정도였다. 자기소개서 없이 오로지 경력과 출신을 적는 지원서만 제출했다. 파견직은 수당이 2~3배나 높기 때문에 중환자실 경력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경력직으로 채용됐지만 신입과 다름없다. 별도로 교육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도움은커녕 짐이 됐다.
―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나.
▲간호사 처우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의사는 특수부서 수당까지 합해 일급 85만원을 준다 해도 파견직으로 쉽사리 옮기지 않는다. 하지만 간호사는 일급 30만원에 정규직을 그만두고 너도나도 파견직 하겠다고 오는 현실이다. 이력을 속이는 개인만을 비난하기 어려운 문제다.
―다른 고충은 없나.
▲폐질환을 다룰 줄 아는 의료진이 부족하다. 특히 의사들은 파견직 지원자 수가 적다. 의사가 지원하면 바로 발령이 난다. 폐질환과 무관한 진료 경험만을 보유한 의사 선생님이 중환자실로 파견을 왔다. 인공호흡기를 다룰 줄 몰랐다. 간호사가 도와주려고 해도 의사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더라. 그렇게 갈등이 생기고 협력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병원에서 지켜보는 코로나19는 어떤가.
▲안 좋은 케이스를 많이 본다. 간호사들이 다 같이 좌절한다. 인공호흡기까지 달면 호전되기 힘들더라. 걸어서 들어온 분도 하루아침에 폐를 촬영한 엑스레이가 하얗게 변한다. 매우 안 좋은 신호다. 다음 날 기관 내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단 뒤에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간호사' 계정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콘텐츠는 뭔가.
▲환자 보호자의 갑질을 다룬 콘텐츠가 공감을 많이 받았다. 많은 환자 보호자들이 간호사를 무시한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한다. 담당 의사, 교수 또는 원장을 부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막상 다음 날 아침,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돌며 "밤 동안 불편한 점 있으셨냐"고 물으면 보호자는 "교수님 덕에 다 편안했다"며 공손해진다.
―의사의 '태움'을 다룬 콘텐츠도 인상 깊었다.
▲의사들이 잘못된 오더를 내놓고선 자기들 바쁜 거 모르냐면서 왜 걸러내지 못 했느냐고 화를 낸다. 한번은 신규 간호사가 의사가 실수로 내린 오더를 거르지 못했다. 의사가 그 사실을 알고 신규 간호사를 혼내려고 전화를 했는데 제가 받았다. 다짜고짜 화를 냈다. 들어보니 본인이 잘못해놓고 신규 간호사를 혼내려는 거였다. 병원을 그만두기로 한 상황이어서 따졌다. "왜 선생님이 오더 잘못해놓고 저희한테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조용해지더라.
―왜 간호사가 되려고 했나.
▲내 직업에 사명감을 갖고 싶었다.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취업률 때문에 간호대에 간다고들 하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예상과는 많이 달랐나.
▲그렇다. 너무 바쁘니까 뿌듯하다는 생각도 못 했다. 외국 드라마를 보면 환자가 건강을 회복한 뒤 껴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 모습을 바랐는데 환자가 업무로만 보였다. 담당 환자가 돌아가셨는데 칭찬을 받기도 했다. 신입 때였다. 사망한 환자에 대한 전산처리를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업무 중요도에 비해 대우를 못 받는다. 하찮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오래 할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고 싶은 다양한 일을 해본 뒤 다른 길을 찾는 게 더 낫다고 봤다.
―그렇다고 간호사를 그만둔 건 아니다.
▲맞다. 앞에 말한 것은 병원에 소속된 정규직 간호사에 대한 설명이다. 병원을 그만두고 서울시교육청 소속 계약직으로 일했다.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건강을 모니터링했다. 그러다 코로나 전담병원 파견직에 지원했다. 병원을 그만 둔 간호사들도 간호사의 틀은 벗어나지 않는다. 보통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또는 대기업 산업간호사로 간다. 일이 적은 요양병원으로 옮기기도 한다.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
▲1인당 담당 환자 숫자를 줄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일반 병동 간호사가 한 명당 4~5명을 본다. 우리나라는 혼자 12명에서 24명까지 케어한다. 중환자실도 미국은 1대 1로 케어하지만, 우리나라는 3~4명을 맡는다. 결국 간호사를 더 채용해야 한다는 건데, 비용 문제로 쉽지 않은 현실이다. 간호대를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신규 간호사를 가르쳐야 하는 중간 연차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신규 간호사 비율이 늘어나고, 기존 업무에 신규 교육까지 떠맡으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일할 줄 아는 경력 간호사들이 관두지 않고 오래 남을 수 있도록 급여, 복지, 환경 등을 개선해야 한다.
―코로나 전담병원 파견직을 마친 뒤 계획은.
▲그때그때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꼭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은 있다. 의료취약 국가나 전쟁터 같은 곳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간호대를 지원한 가장 큰 이유였다. 코로나가 종식된 뒤 기회가 되면 도전해볼 생각이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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