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에 흐르는 역사 따라’ 충주 여행
폐광 활용 ‘활옥동굴’ 다양한 체험으로 인기
국토중앙 표시 전설 담긴 ‘탑평리 칠층석탑’
신라 귀족들 묻힌 ‘누암리 고분군’도 눈길
폐광 활용 ‘활옥동굴’ 다양한 체험으로 인기
국토중앙 표시 전설 담긴 ‘탑평리 칠층석탑’
신라 귀족들 묻힌 ‘누암리 고분군’도 눈길
■활석 캐던 갱도가 관광지로, 활옥동굴
충북 충주시 목벌안길 26 일원에 위치한 활옥동굴은 1922년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국내 유일의 활석 광산이다. 기록상으론 길이가 57㎞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87㎞에 이른다. 또 지하 수직고는 711m나 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활옥동굴은 한때 8000여명의 광부가 일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주던 곳이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 활석이 들어오면서 채산성이 낮아져 문을 닫은 뒤 오랜 기간 방치됐다. 그러다가 지난 2018년 충주시가 민간자본을 투입해 리모델링을 하면서 충주의 새로운 관광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갱도 구간은 전체 중 800m만 개방해 동굴 내부에 각종 빛 조형물과 공연장, 건강 테라피 시설, 키즈존 등을 마련했다. LED와 네온을 이용한 은은한 조명으로 동굴은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또 활석을 분쇄하던 공장은 '활옥동굴 카페'로 변신, 레트로 감성 물씬 풍기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동굴 안은 연중 11~17도의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여름에도 긴팔 상의와 긴 바지가 필요할 정도다. 옛 광산 체험장, 동굴보트장 등 활옥동굴에서만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동굴보트 체험으로 투명카약을 타고 동굴 내부를 즐길 수 있다. 물의 깊이는 어른 허리 정도로 얕지만 물고기가 떼지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탑평리 칠층석탑과 누암리 고분군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중 제일 높다(14.5m). 신라 원성왕 때 국토 중앙에 조성됐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불린다.
경주의 다보탑과 닮은 모양새로 이중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렸고 그 위에 상륜부를 구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전각부의 작은 구멍은 풍경을 단 자리다. 창건 당시에는 꽤 장엄한 모양새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중수한 흔적도 있다. 1917년 해체·복원 작업을 했는데 6층 탑신에서 서류(書類)편과 동경(銅鏡) 2점 등이 나왔다. 이 가운데 동경 2점은 고려 때 것으로 사리를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나라의 남쪽 끝과 북쪽 끝에서 한날 한시에 출발한 두 사람이 딱 마주친 곳에 국토의 중앙임을 표시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한강 유역을 점령한 신라 진흥왕은 귀족과 부호들을 충주로 이주시켰다. 영토 확장을 위한 거점 지역으로 충주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충주로 옮겨온 신라 사람들이 충주 누암리 고분군의 주인이다. 남한강변 중앙탑면 누암리를 중심으로 반지름 약 1.5㎞ 안에 230여기의 고분이 있다. 경주의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크기는 아니지만 보통 무덤보다 훨씬 큰 고분이 많다. 고분군이 있는 마을에는 '무지고개'라는 지명이 있다. '무지'란 '무덤'을 말하는데 예부터 이곳에 무덤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무지고개 주변의 많은 무덤들이 신라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1980년 지표 조사에서다.
고분은 대부분 도굴된 상태였지만 몇 가지 중요한 유물이 수습되기도 했다. 짧은굽다리접시, 바리, 합, 항아리 등 토기와 철기, 금동제 귀고리 등이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짧은굽다리접시(단각고배)다. 짧은굽다리접시는 6세기 중엽 신라에서 유행한 대표적인 유물이자, 가야에서도 사용한 생활 도구다. 이 무덤의 주인을 신라 귀족이나 가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보는 이유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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