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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대형 용머리 장식기와, 태안 청포대 갯벌서 발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9 09:14

수정 2021.08.19 09:14

결합시켜 놓은 취두 /사진=문화재청
결합시켜 놓은 취두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뉴스] 태안 청포대 해수욕장(남면 원청리) 갯벌에서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의 지붕을 장식하는 용머리 모양의 기와 취두(鷲頭)와 갑옷을 입은 사람 모양의 장수상이 발굴됐다. 조선 전기의 취두가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오는 31일부터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공개한다. 왕실 전용의 장식기와가 태안 앞바다에서 나온 이유는 서울 지역에서 제작된 장식기와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세 지방의 왕실 관련 건물에 사용하기 위해 운반하던 중 태안 해역에서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와서(瓦署)는 와장(瓦匠) 40명과 잡상장(雜像匠) 4명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와서의 소재지인 서울에서 만든 기와들을 배로 싣고 운반하던 도중 태안 지역에서 침몰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공개되는 유물은 총 4점으로, 지난 6월 청포대 해수욕장 일대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 중에 찾아낸 취두 1개체(2점)와 지난 2019년 9월, 조개를 캐던 지역주민이 같은 장소에서 발견해 신고한 취두의 아랫부분 1점, 한 달 후인 2019년 10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신고지점에서 추가로 수습한 장수상 1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 등 권위 있는 건축물의 지붕에 제한적으로 취두, 잡상(雜像) 등 장식기와를 사용했다. 잡상(雜像)이란 궁궐이나 누각 등 지붕 위 네 귀에 덧얹는 여러 짐승모양의 기와를 말한다.

용머리 모양의 장식기와인 취두는 주로 위·아래로 나뉜 두 부분 또는 세 부분으로 분리해 만든 다음, 지붕에 얹을 때는 쇠못으로 상하를 고정하여 연결했다. 잡상은 추녀마루 위를 장식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기와로 장수상을 맨 앞에 배치한다.

장식기와가 발굴된 지점 및 출토 상태 /사진=문화재청
장식기와가 발굴된 지점 및 출토 상태 /사진=문화재청

발견된 취두(높이 103cm, 최대너비 83cm)는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린 커다란 용의 머리 위에, 작은 용 한 마리와 나선형의 음각선(오목새김한 선)이 표현되어 있다. 용의 얼굴은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위엄이 있으며, 움직임에 생동감이 넘치고 비늘이나 갈기, 주름의 표현 역시 정교하다.


이 취두는 중국 명나라(1368~1644년) 사찰인 지화사(智化寺)의 정문(正吻)과 유사하고, 2008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 숭례문에 놓인 취두의 형태와 문양이 같은 모습이다.

장수상(높이 30cm, 최대너비 22cm)은 몸에 갑옷을 두르고 좌대(座臺)에 앉아서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린 모습으로, 인물의 움직임에 생동감이 있으며 갑옷 비늘 역시 섬세하게 표현됐다.
경복궁이나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의 장수상과 형태, 문양 표현 방식 등이 같은 모습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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