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다 큰 딸. 딸은 자신을 위로하러 온 엄마에게 묻는다. “사랑을 꼭 해야 할까?” 젊은 시절 불같은 사랑을 했다 인생 꼬인(?) 엄마가 답한다.
“그럼, 인간이라면 해야지.” “왜?” “인간은 먹고 자고 싸고 그런 걸로만 살아지는 건 아니니까” “엄마는 사랑 안 믿는 거 아니었어?” “어떻게 사랑을 안 믿어. 네가 증거인데.” “나는 누구 함부로 좋아하고 그러면 인생 꼬인다는 증거 아니었어? 인어공주처럼.” “누가 그래? 아무리 거짓 같은 사랑도 이렇게 이쁜 거 하나는 남겨준다, 넌 그걸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인데.”
tvN 월화드라마 ‘너는 나의 봄’ 13화의 한 장면이다. 남녀주인공 다정(서현진)과 영도(김동욱)가 원치 않게 이별을 한 직후, 다정과 그녀의 씩씩한 엄마 미란(오현경)이 이불 속에서 나누는 대화다.
서현진 김동욱 주연의 이 드라마는 저마다 어릴 적 상처를 가슴에 품은 채 살고 있는 세 남녀의 이야기를 스릴러가 가미된 멜로로 풀어내고 있는 작품. 매회 시청자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듯한 체험을 안겨주는 ‘힐링’ 드라마다. 영도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라는 특징도 있지만 다정 역시 사려 깊은 성격의 인물로 타인이 하는 말이나 행동 이면의 진심을 읽는데 일가견이 있다.
13화에서는 속깊은 딸을 둔 엄마 미란 역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리 거짓같은 사랑도 이렇게 이쁜거 하나 남겨준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면서 행복해하지 않을 자식이 있을까? 어린 두 남매를 홀로 어렵게 키운 젊은 엄마도 분명 제 인생이 억울하고 불쌍했을텐데, 자식에게 신세 한탄하지 않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 것. 세상의 모든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가깝게는 6월 종영한 드라마 ‘마인’에서 세 여자의 협공을 받았던 ‘악역’ 한지용(이현욱)이 그 예다. 그는 어릴 적 자신의 엄마에게 들은 원망의 말을 커서도 잊지 못한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친모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던 그는 자신을 길러준 계부와 계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지용의 아들은 다른 운명을 맞았다. 계모 서희수(이보영)가 지용의 아들을 제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게 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 중 하나였다.
'너는 나의 봄' 14화에서 다정은 어린 시절 해외로 불법 입양된 뒤 의사로 성공한 이안(윤박)에게 묻는다. 이안은 앞서 다정에게 구애하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자살한 최정민(윤박)과 쌍둥이 형제 사이다. 최정민이 정말 연쇄살인범인지 아니면 누명을 썼는지에 대한 수사가 재개되자 다정은 우연히 마주친 이안에게 최정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최정민은 죽기 전 '참 오래 찾았다’는 메모와 함께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다정에게 남겼다.
“나를 왜 찾았을까, 내가 어떤 기억을 남긴 건지, 아니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궁금한 게) 그게 답니까?” “옆에 아무도 없었냐고도 물어보고 싶어요. 누구든 한명만 있었다면?” “강다정씨도 어릴 때 옆집 딸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우리 엄마가 목숨 걸고 지킨 딸이었거든요.” “아무도 없었다면요?” “나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했겠죠. 지금이라도 더는 나빠지지 말라고.”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려면 부모뿐 아니라 이웃을 비롯한 지역사회 또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다는 의미다. 한편으론 아이의 부모가 부재하다면 손 내밀어주는 이웃이나 믿을만한 사회단체라도 그 아이를 지켜줘야 그 아이가 온전히 클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다정의 마지막 대사에는 악연을 맺은 상대에 대한 연민이 녹아있다. 살아남은 이안이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이안은 예기치 못한 다정의 진심에 어떻게 반응할까? 영도와 다정의 사랑은 청신호가 켜졌으니, 이제 이안의 상처를 들여다볼 때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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