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떠 오른 해상직원 근로조건 개선
근로기준법 대신 선원법 적용받는 해상직원
육상 근로조건 향상됐지만 선원법은 제자리
선원법은 해수부·국회 농해수위 담당..관심 적어
해상직원들 "선원법, 고용부·국회 환노위 담당必"
"추가수당 못 받는 선원법 개정필요" 국민청원도
"해상직원 복지향상 없는 해운재건은 반쪽짜리"
[파이낸셜뉴스]
근로기준법 대신 선원법 적용받는 해상직원
육상 근로조건 향상됐지만 선원법은 제자리
선원법은 해수부·국회 농해수위 담당..관심 적어
해상직원들 "선원법, 고용부·국회 환노위 담당必"
"추가수당 못 받는 선원법 개정필요" 국민청원도
"해상직원 복지향상 없는 해운재건은 반쪽짜리"
HMM 파업 이슈로 선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습니다. 선박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선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곧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전 세계적인 물류대란이 촉발되면서 여느 때보다 해운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HMM이 흠슬라(HMM+테슬라)라고 불리며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HMM 직원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면서 해상 직원에 대한 처우 개선 이슈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선원법 개정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눈길을 끕니다. 이달 26일 업로드된 청원으로, 제목은 '선원법의 개정을 요청합니다'입니다.
근로기준법 아닌 선원법 적용받는 해상직원
청원 내용을 설명하기 앞서, 선원법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항해사, 기관사 및 해상 직원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지 않습니다. 특별법인 선원법의 적용을 받죠. 육상과는 다른 근로환경을 인정한 겁니다.
선원법 제1장 총칙 제1조(목적)에 따르면 "이 법은 선원의 직무, 복무, 근로조건의 기준, 직업안정, 복지 및 교육훈련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함으로써 선내(船內) 질서를 유지하고, 선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며 선원의 자질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선원들의 권익 증진을 위한 방향으로는 법 개정이 잘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적용받는 덕에 국민적 관심이 높은 근로기준법이 그간 꾸준히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바뀌어 온 것과는 반대입니다. 해상 직원들이 대부분 선박에 탑승해있는 탓에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선원법은 해양수산부 내 '선원정책과'에서만 담당합니다. 고용노동부가 근로기준법을 다루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임금근로시간과 △여성고용정책과 등 3곳에서 근로기준법을 다룹니다. 근로기준법에서 다루는 항목 대부분을 선원법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조직은 3배가량 부족한 겁니다.
법안 개정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의 관심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선원법을 담당하는 상임위원회가 환경노동위원회가 아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기 때문입니다. 선원들을 위한 법 개정이 이뤄지기보단 해운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월급 30만원 받는 실습생
이런 문제로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대표적인 문제가 제목에서 언급한 실습항해사, 실습기관사의 급여입니다. 정식 항해사, 기관사가 되려면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국제 규정인 해사노동협약(MLC, Maritime Labour Convention)에 따라 1년간 실습을 마쳐야 정식 자격증이 주어집니다.
이들은 실습생 신분으로, 교육을 받기 위해 선박에 탑승하지만 모두 실제 업무에 투입됩니다. 해운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1척당 탑승 인원을 줄여가고 있는 탓에 대부분 선박은 늘 일손 부족에 시달립니다. 빠릿빠릿한 실습생을 받으면 업무가 한결 수월해지죠.
실습생들은 다른 해상직원들과 함께 선박에서 먹고 자면서 교육과 실습을 병행하지만 월급은 300달러에 불과합니다. 작업량이 많은 케미컬선 등에서 1000달러가량을 지급하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케미컬선은 20여개의 달하는 화물창을 직접 청소하는 탓에 업무 강도가 높습니다)
실습생들이 30만원에 불과한 돈을 받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선원법에 관련 규정이 없어서입니다. 항해사 A씨는 "10년 전에도 실습생 월급은 30만원이었다"며 "관련 규정이 없으니 회사가 올려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작년 2월 실습선원의 실습시간 및 휴식시간 등을 정한 규정이 신설됐지만 급여 문제는 역시 빠졌습니다.
선원 아닌 해운사 이익을 위한 '선원법'
다시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청원자는 선원법 제62조 5항을 삭제하거나 개정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제62조는 시간외근로수당에 관한 조항입니다. 제5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⑤ 선박소유자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제60조제1항·제2항 및 제6항에 따른 시간외근로 중 1주간에 4시간의 시간외근로에 대하여는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갈음하여 제70조에 따른 유급휴가 일수에 1개월의 승무기간마다 1일을 추가하여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제5항에서 언급한 제1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 선박소유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선원에게 시간외근로나 휴일근로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100분의 150에 상당하는 금액 이상을 시간외근로수당으로 지급하여야 한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제1항에서 시간외근로를 하면 수당을 줘야 한다고 적어두고는, 제5항에서는 수당 대신 유급휴가를 대신 줄 수 있다고 열어둔 겁니다. 청원자는 "위와 같이 선원법을 적용받는 근로자의 경우는 주당 4시간 시간외근로(월 약 16시간 이상)를 근로할 경우 수당으로 받는 것이 아닌 유급휴일(연차) 1일을 제공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썼습니다.
또 청원자는 이 규정이 선원이 아닌 해운사를 위한 조항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작성자는 "이 조항이 개정된 선원법 [시행 2006. 4. 1.] [법률 제7479호, 2005. 3. 31., 일부개정] 개정 내용중 '주요내용'에 현행 주 44시간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고, 유급휴가를 1일 늘리도록 하되, 선박소유자의 금전적 부담을 덜기 위하여 시간외근로 가운데 월 16시간은 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유급휴가 일수에 1일을 추가하도록함이라고 명시돼 있다"며 " 주5일제 시행 당시의 선박소유자의 금전적 부담을 덜기위해 개정된 사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는 근로자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법인데 선원법 제1조의 목적인 선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을 하지 않는 법률이라고 생각된다"며 "따라서 해당 선원법 제62조 5항의 삭제 또는 개정을 요청한다"고 적었습니다.
수당 대신 휴가를 받아서 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회사원들이 연차를 모두 소진하기 쉽지 않듯, 해상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상에서 6개월~1년가량 휴일도 없이 일하다 육상으로 2~3개월간 휴가를 나와도, 회사에서 부르면 곧바로 나가야 합니다. 기관사 B씨는 "정해진 휴가를 모두 사용하는 해기사는 없다"며 "인사팀에서 급하게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무시하긴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시간 외 근무를 해도 모두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해사노동협약(MLC)에 따라 해상직원은 정해진 시간 이외의 초과 근무가 금지됩니다. 각국 항만에 입항하면 종종 항만국의 검사관(PSCO, Port State Control Officer)이 승선해 각종 규정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체크합니다. 중대 결함이 발견되면 항구에 발이 묶이기도 합니다. 이때 초과근무 금지 규정을 지켰는지도 살펴봅니다. 검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거짓으로 근무시간을 기입합니다.
최근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의한 HMM 해상직 노조는 사측과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8년간 동결된 임금도 HMM 직원들을 파업으로 이끈 주요 요인 중 하나지만, 열악한 제도로 인해 불합리한 처우를 받았던 긴 세월도 한몫했을 거란 게 해상직원들의 이야기입니다.
선원 없는 해운재건, 반쪽짜리 해운강국
한국 해기사들은 우수자원으로 손꼽힙니다. 기관사 C씨는 "외국 기관사들은 선박에 문제가 생겨도 웬만하면 손대지 않고 항구에 정박하면 회사에 엔지니어를 불러 달라고 요청한다"면서 "반면 국내 기관사들은 어떻게든 직접 고친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해운사들이 해상직원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인으로 대체해도 선장, 기관장 등 최종 책임자만큼은 한국인을 태우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국내 해기사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육상직과의 임금 격차가 점점 좁혀지는 데다가 승선 개월 수도 긴 탓에 굳이 고생하면서 배를 탈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해양대를 졸업한 우수 해기사 자원들이 승선예비역 조건만 채운 뒤 해운업계를 떠나고 있습니다. (해기사는 5년 안에 3년간 실제 승선하면 군 면제를 받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최임 초기부터 해운업 재건을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허망하게 날려버린 글로벌 선사 한진해운의 선복량을 복원시키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초대형컨테이너선 출항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인력이 없는 선복량 복원은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해상직원 출신인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이 국내 최대 선사로서 갖는 상징성이 크다"며 "HMM의 협상 결과에 따라 다른 해운사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 정부가 해운재건을 외치면서 해상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 주목하지 않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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