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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개의 부족, 스무개의 언어… 아프간의 ‘예고된 분열’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05 18:12

수정 2021.09.05 18:12

갈등에 사로잡힌 아프간의 미래
42% 달하는 파슈툰족 탈레반 지지
타지크·하자라족 등과의 대립 격화
급진 IS도 탈레반과 사사건건 충돌
카불공항 테러 등 민간인 공격 불사
무장조직 탈레반에 대항하는 저항군이 지난 1일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판지시르 언덕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페르시아어로 '다섯 사자'라는 뜻의 판지시르는 소련의 침략 때도 점령되지 않았던 천혜의 요새다. 저항군은 탈레반과 최후 교전을 벌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무장조직 탈레반에 대항하는 저항군이 지난 1일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판지시르 언덕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페르시아어로 '다섯 사자'라는 뜻의 판지시르는 소련의 침략 때도 점령되지 않았던 천혜의 요새다. 저항군은 탈레반과 최후 교전을 벌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으로 남게 된 2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다민족 국가인 아프간은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된다.
이슬람 무장정파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은 중앙집권 정부 탄생이 그동안 쉽지 않았다. 일례로 1901년 이후 현재까지 아프간의 국기는 20회 이상 바뀌었다. 1~2년 만에 국기가 바뀐 경우도 수두룩하다. 가장 큰 이유는 민족적 다양성 때문이다. 아프간에는 열네개 부족이 있고, 언어도 20개에 달한다. 아프간은 국제소수민족권리단체(MIR)가 집계한 '민족 위협지수'에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위험한 국가였다.

아프간은 5000~7000m급 산맥이 널리 퍼져 있고, 해발 2000m 이상 고산 지역이 전 국토의 절반이다. 경작지는 10%에 불과하다. 국민 대부분이 목축을 하면서 산다.

아프간에선 전 세계 양귀비 생산량의 87%가 재배되고 있다. 먹고살 게 없으니 양귀비를 재배해서 수출하는 것이다. 아편은 양귀비에서 추출된다. 이슬람에선 원래 술과 마약 등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물질은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은 직접 아편을 먹지 않고 비이슬람권에 수출하니까 율법을 어긴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탈레반 휘하의 아프간은 여성인권 탄압과 함께 마약이 판치는 나라가 될 우려가 크다.

■아프간 14개 민족 간 갈등 극심

아프간에선 과반을 차지하는 민족이 없다. 아프간 내 최대 민족은 전체 인구의 42% 이상을 차지하는 파슈툰족이다. 주로 수니파이고, 파슈토어를 사용하며, 18세기 이후 아프간 정치를 지배해 왔다. 1996~2001년 정권 이후 두 번째로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지배하는 집단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전 정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도 파슈툰족이었다. 지난 수년간 많은 파슈툰 지도자가 아프간을 통치할 권리를 강조해 왔다. 이로 인해 다른 민족들의 반감을 샀다.

아프간 인구의 27% 이상을 차지하는 두 번째로 큰 민족은 타지크족이다. 주요 언어는 아프간 방언의 일종인 다리어다. 주로 북부와 서부에 분포하며 판지시르 계곡, 서부 도시 헤라트, 일부 북부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다. 타지크족은 1980년대 소련군뿐 아니라 최초의 탈레반 정권에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수십년 동안 다수의 저명한 타지크족 출신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소련군과 싸웠던 존경받는 반군단체 무자헤딘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 즉 '판지시르의 사자'는 아프간인 중 가장 유명하다.

그 밖에 하자라족은 중앙아시아와 투르크족에 기원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고, 주로 아프간 중부에 거주한다. 다리어 방언을 사용한다. 주로 시아파 회교도인 하자라족은 1세기 이상 아프간에서 종교적·인종적 탄압과 차별을 받았다. 탈레반은 대부분 수니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 여러 아프간 정부들 사이에서 학살을 겪었다. 특히 시아파를 이단자로 규정하는 강경 수니파인 탈레반 정권하에서 고통을 겪었다.

또 다른 수니파인 이슬람국가(IS) 등 아프간에서 활동 중인 다른 무장단체들도 학교와 병원을 가리지 않고 치명적 폭탄 공격으로 하자라족을 테러의 표적으로 삼았다.

우즈베크족도 있다. 아프간계 우즈베키스탄인은 또한 인구의 약 10%다. 주로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과 가까운 북쪽에 거주하고 있다. 주로 투르크 민족인 이들은 주로 수니파다.

가장 유명하고 악명 높은 아프간의 우즈베크족은 군벌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다. 그는 소련과 함께 무자헤딘에 맞서 싸웠고, 사실상 북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중심으로 자신의 거점을 마련했다.

그는 2001년 미국의 침공 이후 탈레반 통치를 종식시키는 데 도움을 준 북부동맹의 유력 인사였다. 이후 가니 행정부에선 초대 부통령으로 합류했다. 그는 이달 마자르이샤리프가 탈레반에 함락되자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했다. 4대 민족 외 유목민족인 아이마크족, 투르크멘족, 발록족, 누리스타니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도 있다.

게다가 아프간에는 극단 이슬람단체인 IS-호라산(IS-K)까지 활동 중이다. IS가 2015년 1월 아프간에 일종의 지방정부 성격으로 설립했다. IS는 2014∼2015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서방국가를 상대로 테러 공격을 자행하며 악명을 떨쳤으나 현재는 상당 부분 세력을 잃고 잔존 지부들이 테러를 이어가고 있다.

■IS-K 등 테러단체와 탈레반 갈등

IS-K 조직원 대부분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과격주의자들이다.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단체로 꼽힌다. 지하디스트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2004년 이라크에서 있었던 김선일씨 사건과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이다. 이라크에서 가나무역이라는 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김선일씨는 한국군 파병 철회를 요구하던 무장단체 알타우히드 왈지하드에 의해 참수당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19일 아프간에 자원봉사를 갔던 샘물교회 선교단원 23명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자신들의 동료인 죄수 27명의 석방을 요구하던 탈레반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나머지 21명은 피랍 42일 만에 풀려났다.

IS-K 조직 명칭의 호라산(Khorasan)은 현재의 아프간과 파키스탄, 이란 동부 등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IS-K는 창립 직후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의 공습으로 아프간 내 거점을 상실했는데, 현재 파키스탄과 인접한 아프간 동부 낭가하르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은 자살폭탄 테러와 표적 암살 등으로 악명이 높다. 2017∼2018년에만 민간인 대상 테러 공격을 100건가량 자행했다. 2021년 5월에는 카불의 한 여학교에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 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카불공항 인근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 아프간 현지인과 미군 등 200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냈다.


IS-K와 탈레반은 경쟁적 적대 관계로, 이들은 이슬람 교리에 대한 이해 차이는 물론 아프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탈레반은 서방과 타협을 통해 아프간에 이슬람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IS-K는 전 세계의 이슬람 신정국가화를 목표로 서방세계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20년 3월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탈레반 대원 일부가 IS-K로 옮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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