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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g 건우가 만든 기적', 국내 첫 200g대 초미숙아 합병증 없이 가족 품으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06 16:38

수정 2021.09.06 16:38

건우의 퇴원을 축하하며 건우와 건우 부모님, 건우 주치의인 김애란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가운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건우의 퇴원을 축하하며 건우와 건우 부모님, 건우 주치의인 김애란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가운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체중 288g. 손바닥 한 폭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아기가 지난 4월 4일 서울아산병원 6층 분만장에서 세상에 첫 숨을 내뱉던 순간, 153일간의 기적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작은 손발을 꿈틀거리는 아기에게 의료진은 어서 건강하고 팔팔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288g을 거꾸로 해서 '팔팔이(882)'라고 불러주었다.출생 직후 스스로 숨 쉴 수조차 없던 팔팔이는 거짓말처럼 소생해 불가능을 희망으로 바꾸었고, 심장이 멎는 절체절명의 순간마저 무사히 극복해 희망에 확신을 얹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팔팔이를 위해 엄마는 '가장 좋은 약'인 모유를 전달하고자 경남 함안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해 서울로 오는 차안에서 모유 유축을 하며 그렇게 다섯 달 동안 1만4000㎞를 달렸다. 국내에서 가장 작은 아기가 1%도 안 되는 생존 확률에 도전한 결과는 '기적'이었다.


태어난 지 4일째 된 건우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태어난 지 4일째 된 건우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팀(김기수 · 김애란 · 이병섭 · 정의석 교수)은 24주 6일 만에 체중 288g, 키 23.5cm의 초극소저체중미숙아로 태어난 조건우(5개월/남) 아기가 153일 간의 신생아 집중치료를 마치고 3일(금) 건강하게 퇴원했다고 6일 밝혔다.

400g 이하 체중의 초미숙아가 생존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200g대로 태어난 건우는 국내에서 보고된 초미숙아 생존 사례 중 가장 작은 아기로 기록됐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초미숙아 등록 사이트(400g 미만으로 태어나 생존한 미숙아)에는 현재 286명의 미숙아가 등록돼 있는데, 그 중에서도 건우는 전 세계에서 32번째로 가장 작은 아기로 등재될 예정이다.

건우는 결혼 6년 만에 선물처럼 찾아온 첫 아기였다. '엄마 키 174cm, 아빠 키 191cm인 장신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는 얼마나 클까?' 많은 이들의 기대와 축복 속에 건강히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임신 17주차 검진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태아가 자궁 내에서 잘 자라지 않는 '자궁 내 성장지연'이 심해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3월 말 경남 함안에서부터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태어난 지 한달째 된 건우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태어난 지 한달째 된 건우가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엄마의 간절한 소망을 들은 산부인과 정진훈 교수는 태아의 크기가 원래의 임신 주수보다 5주가량 뒤처질 정도로 작고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태아가 버텨주는 한 주수를 최대한 늘려보기로 하고 입원을 결정했다.

건우 엄마는 곧바로 4월 1일 고위험산모 집중관찰실로 입원한 후 태아 폐 성숙을 위한 스테로이드와 뇌 발달에 도움이 되는 황산마그네슘을 투여 받았다. 하지만 심박동수 감소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발생, 4월 4일 응급 제왕절개로 건우를 출산했다.

예정일보다 15주 정도 앞선 24주 6일 만에 세상에 나온 건우는 폐포가 아직 완전히 생성되지 않아 자발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곧바로 기관지 내로 폐 표면활성제를 투여 받은 건우는 다행히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그 길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져 신생아팀의 집중치료에 들어갔다.

건우는 미숙아 중에서도 초극소저체중미숙아라 일반적인 미숙아에게 시행되는 술기도 적용하기 어려웠다.

주치의인 신생아과 김애란 교수는 단순히 건우를 살리는 것을 넘어 합병증 없이 무탈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잘 살리자'는 각오를 다졌다. 신생아팀 의료진은 같은 목표를 위해 최상의 팀워크를 발휘했다. 24시간 건우 곁을 지킨 전공의와 전임의, 간호사를 비롯해 미숙아 골절 예방을 위해 맞춤 정맥주사를 조제해준 약사, 건우가 먹을 모유를 안전하게 매번 멸균 처리해준 간호사까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의료진과 엄마, 아빠의 소망대로 건우는 고비마다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다. 미숙아에게 흔한 장염이 생겨 일주일가량은 금식을 하며 정맥관으로 조심스럽게 영양분을 공급한 시기도 있었지만 무사히 극복해냈다. 태어난 지 한 달 되던 날, 잘 뛰던 심장이 갑자기 멎는 위기의 순간에도 긴급 소생술을 받으며 잘 버텨주었다. 동반된 폐동맥 고혈압과 미숙아 망막증도 다행히 약물치료로 조절이 됐고 퇴원 전 진행한 탈장 수술도 문제없이 마쳤다.

건우 부모님의 헌신도 건우에게 큰 힘이 됐다. 건우에게 모유를 전달하기 위해 다섯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경남 함안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지 왕복 700km 이상 최대 10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갔다. 그 날 만큼은 새벽 3시에 출발해 차안에서 유축을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비록 코로나 위험 때문에 건우를 보지 못했지만 의료진이 건우를 잘 돌봐주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의료진을 전적으로 믿었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건우는 생후 80일 경 인공호흡기를 떼고 적은 양의 산소만으로도 자발적인 호흡이 가능해졌으며 체중도 288g에서 1kg을 돌파했다. 생후 4개월 중반에는 인큐베이터를 벗어났고 생후 5개월에 다다랐을 때는 체중이 2kg을 넘어섰다. 건우 엄마 이서은 씨(38세)는 "건우는 우리 부부에게 축복처럼 찾아온 아이로 어떤 위기에서도 꼭 지켜내고 싶었다"며,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와 신생아팀 의료진 덕분에 건강한 건우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뿐이다. 가장 작게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가장 건강하고 마음까지도 큰 아이로 잘 키우겠다"고 퇴원 소감을 밝혔다.

건우 주치의인 김애란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신생아과 교수는 "건우는 신생아팀 의료진을 항상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아이였지만, 동시에 생명의 위대함과 감사함을 일깨워준 어린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런 건우가 온전히 퇴원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고 기쁘다"며, "최근 산모 고령화와 난임으로 인한 인공수정의 증가로 미숙아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다행히 치료 기술이 발전해 미숙아 치료 성공률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미숙아를 가진 많은 가족분들이 건우를 보며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국내에서 한 해 태어나는 1.5kg 미만 미숙아 수는 3000여명에 달한다. 미숙아는 호흡기계, 신경계, 위장관계, 면역계 등 신체 장기가 미성숙하다. 출생 직후부터 호흡곤란증후군, 미숙아 동맥관 개존증, 태변 장폐색증 및 괴사성 장염, 패혈증, 미숙아망막증 등 합병증을 앓게 되며, 재태기간과 출생체중이 적을수록 질환 빈도와 중증도가 높아진다.

치료를 위해 작은 주사 바늘을 사용하더라도 그 길이가 아기의 팔뚝 길이와 비슷해 삽입이 쉽지 않고, 단 몇 방울의 채혈만으로도 빈혈이 발생할 수 있다.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너무 작기 때문에 수술조차 할 수 없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의료진의 숙련된 노하우가 중요하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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