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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근무 여전한데 임금만 줄어… 어쩔 수 없는 '퇴근 후 투잡' [주52시간제 부작용 속출]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07 18:21

수정 2021.09.07 22:34

30인 미만 사업장 16만명 '부업'
벤처 R&D인력, 대기업 이탈 속출
일손 부족 농업, 주52시간제 검토
업종별 구분 적용·감독 강화 필요
밤샘근무 여전한데 임금만 줄어… 어쩔 수 없는 '퇴근 후 투잡' [주52시간제 부작용 속출]
주52시간제가 새로 적용되고 있는 5~49인 사업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근로자들은 임금보전을 위해 투잡에 뛰어들고 있다. 정상적 근무패턴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제도 시행 초기 부작용에 따른 보완요구가 잇따르고 있지만 일손이 많이 부족한 농업 등에도 주52시간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실에 맞는 주52시간제 보완·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공공연한 '투잡'…농업도 확대 검토

7일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투잡을 뛰어야 하는 근로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이 줄어버린 상황이라 투잡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며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지만 특히 조선·뿌리 쪽은 공공연하게 많이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우려했다. 일을 더 하고 싶지만 한 회사에서 연장근로를 하지 못해 일을 마친 뒤 인근 회사에 가서 또 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근로자는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 버젓이 배달복 등을 입고 출근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1일부터 주52시간제가 5~49인 사업장으로 확대된 이후 부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이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5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의 7월 한 달간 부업자 수는 16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만7000명) 대비 약 20% 증가했다. 추가·연장 근무가 줄어든 탓에 감소한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업자 수는 1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확연하게 많았다. 지난 7월 전체 부업자 수 56만6000명 가운데 5인~100인 미만 사업장 부업자 수는 22만1000명으로 나타났다. 100~300인 이상 사업장은 5만명에 그쳤다.

벤처업계에서는 실질임금 감소로 업계 성장동력이 꺼질까 우려하고 있다. 업계 핵심인 연구개발(R&D) 인력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벤처협회 관계자는 "벤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 적용으로 벤처기업 R&D 우수인력의 대기업 이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곳곳에서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52시간 확대 적용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농업분야 근로기준 개선 영향 및 표준화방안 연구' 용역을 입찰공고했다. 농업에도 법정 근로시간·휴일 적용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현재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제외하고 농산물 제조·가공 업체, 도축업체 등은 주52시간제를 따라야 한다. 농작물만 재배하는 농가는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법적 근로시간 의무 등을 적용받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용역 등을 통해 개선될 경우 주52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특히 농번기엔 날씨 등에 따라 인력을 유연하게 써야 하는데, 주52시간제 등을 적용하면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업종별 구분·예외 필요

전문가들은 주52시간제의 일괄적 적용보다 업종별 구분 적용과 예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실제로 취지는 좋았으나 일괄적 규제로 인해 업종 종사자가 피해를 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019년 시행된 강사법(고등교육법)으로 강사들의 처우는 나아졌지만 강사 자체가 많이 없어졌고,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해도 중소상인에게 그 혜택이 크게 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부 제조업 등 일하는 시간만큼 생산성이 높아지는 업종 등이 아니라면 임금격차도 감안하지 않고 모든 업종에 일괄적으로 (주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뿌리기업은 설비를 24시간 내내 가동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조선업계는 대표적 수주산업으로 국내법을 고려하지 않는 해외선주의 주문에 따라 움직인다. 이 때문에 업계 관계자는 "주52시간제의 업종별 구분 시행이 정 힘들면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현재 주 단위로 돼 있는 초과근로 한도를 월 단위·연 단위로 개선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벤처업계도 "벤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R&D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우수 R&D 임금지원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제도 안착이 시급하지만 아직 정부부처의 감독 실효성은 매우 떨어진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에 불시감독 대신 컨설팅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 실제 한 기업 관계자는 "대대적 단속이나 정기적 단속이 아니라 신고가 들어오면 단속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그런 경우가 아니면 실질적으로 고용부까지 가서 제재나 처벌받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관련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공공부문의 경우 인력예산이 있을 수 있지만, 감찰 감독 등은 고용부의 기본업무이기 때문에 관련 예산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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