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내 땅 돌려 달란 말이야' '창고 지어드리는 대가로 저한테 주신다고 했잖아요'
2021년 3월12일 해가 질 무렵 전남 나주시의 한 자택에서 큰 소리가 났다. 부동산 문제로 수년간 갈등을 겪던 중년 남성과 노인이 말다툼을 한 것이다.
큰소리가 잦아들면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이내 정적이 흘렀다. 노인은 닷새 후 빈 창고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건의 발단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A씨(55)는 B씨(80)의 퇴비창고를 지어주는 대가로 토지를 받았다.
그런데도 B씨가 여러 차례 찾아와 토지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A씨는 B씨에게 불만을 품게 됐다. 당시 B씨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하루는 B씨가 트랙터를 몰고 집을 나섰다. B씨가 향한 곳은 A씨의 자택이었다.
B씨는 3월12일 6시30분쯤 A씨가 사는 방에 찾아와 토지를 돌려달라며 A씨를 폭행했다. A씨가 자리를 피했지만, B씨는 계속 따라와 A씨를 마구 때린다.
이에 참지 못한 A씨는 주먹으로 B씨를 수차례 폭행한 후 숨을 못쉬게 했고, B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이 모든 일이 불과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B씨를 살해한 A씨는 B씨의 사체를 숨기기로 마음 먹는다. A씨는 우선 B씨가 타고 온 트랙터를 숨긴 뒤 혈흔을 물로 닦고 범행도구 등을 불에 태우며 살해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튿날 새벽 4시45분. 빈 창고에서 증거를 인멸하기로 결심한 A씨는 이를 실행에 옮겼고, B씨는 닷새 뒤인 같은 달 17일에야 발견됐다.
같은 시각 B씨의 가족들은 평소 치매를 앓던 B씨가 하루종일 집에 돌아오지 않자 112에 신고를 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사건 당일인 3월12일 B씨가 A씨와 만난 정황을 파악하고 A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수사 초기 'B씨와 만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던 A씨는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을 자백했다.
이후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자리를 피했는데도 무단 침입한 B씨의 폭행으로 머리를 다쳤고, 부당한 침해 행위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며 정당방위와 면책적 과잉방위를 주장했다.
또 '폭행을 중단시키기 위해 양손으로 B씨의 목을 잡았을 뿐 살해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B씨가 쓰러진 후에 비로소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며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술에 취한 상태였다며 심신 미약도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B씨를 제압한 이후로는 방어가 아닌 공격행위이고 범행 30분 만에 B씨가 타고 온 트랙터를 숨기는 등 증거를 인멸했다"며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봤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절대적인 가치이므로 피고인의 죄책이 매우 무겁다. 피해자의 유족들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 9명 모두 정당·과잉방위로 볼 수 없다며 유죄로 평결했다. 배심원들은 사체 은닉에 대해서도 만장일치로 유죄 판단을 내렸다.
결국 A씨는 징역 18년에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고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