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北만 바라보는 우물 안 외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27 18:09

수정 2021.09.27 18:09

[구본영 칼럼] 北만 바라보는 우물 안 외교
추석 연휴 중 TV 화면에 비친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장은 썰렁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다수 정상들은 화상으로 연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직접 참석해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별 반향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만나지 못한 채 귀국했다.


반면 북한은 널뛰듯 반응했다.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간 종전선언 관련 당사자 중 유난스러웠다. 처음엔 "종잇장" "허상"(이태성 외무성 부상)이라고 비웃더니, 7시간 만에 "흥미 있는 제안"(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라고 표변했다. 김여정은 25일 담화에선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며 문재인정부에 거꾸로 '미끼'를 던졌다.

북한의 반응에도 한 가지 일관성은 있었다.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먼저라는 것이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의 입으로 염불(종전선언)보다 잿밥(유엔 대북제재 해제, 주한미군 철수 등)이 주관심사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드러낸 꼴이다.

종전선언은 새 제안도 아니다. 문재인정부가 임기 내내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일환이다. 하지만 역대 미국 정부의 '선비핵화·후종전선언' 원칙이란 벽에 막혔던 사안이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안 보이면 넘기 힘든 허들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20일 "북한이 (영변 핵시설 재가동 등) 핵개발계획에 전력 질주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고장난 유성기처럼 낡은 레퍼토리를 틀고 있다. 그것도 대선 국면에. 그러니 내세울 업적이 없어 조급해진 탓에 핵보유로 체제를 지키려는 북한의 속셈에 눈감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문 대통령은 올해 8·15 경축사에서 유사한 착시를 드러냈다. "동서독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다"며 독일 통일 과정을 복기한 대목이 그랬다. 그러자 통독 전문가 손선홍 전 주독대사관 총영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즉 "서독의 압박과 인권정책이 동독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면서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도 "통독과 관련한 팩트를 아는 전문가조차 없는 청와대 보좌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올해 남북 유엔 동시가입 30주년을 맞았다. 1991년 노태우정부는 '동독과 수교하는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할슈타인원칙을 폐기한 서독의 선례를 따랐다. 동독 사회주의 정권을 국제질서 속에서 변화시키려 한 원려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후 1992년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효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남한 내 전술핵을 철수시켰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 개발에 나섰다.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가 유엔의 현안이 된 이유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는 남북 간 어젠다이자 국제 현안이다. 이런 이중 구조를 간과한 채 임기 말 정부가 종전선언 등 '우리끼리 이벤트'에만 정신이 팔리면 진짜 한반도 평화는 요원해진다.
내년 대선에서 '우물 안 외교'에서 벗어나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는 후보를 골라야 할 유권자의 어깨만 무거워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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