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뉴스1) 조민주 기자 = 두 자녀의 엄마 A씨의 소박하지만 행복했던 일상은 어느날 갑자기 송두리째 무너졌다. 매일 아침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보냈던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다.
지난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 보육을 하고 있는 A씨는 심리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 2일. 만 11개월이던 A씨의 둘째 아이는 3살이 된 이듬해 11월 1일까지 1년 8개월간 울산 남구의 모 국공립어린이집에 다녔다.
평범했던 나날이었지만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닐수록 점점 등원을 거부했고, 이상 행동도 잦아졌다.
반복된 이상 행동에 심상찮음을 느낀 A씨는 친정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면담을 요청해 원장실에서 3일 분량의 CCTV 영상을 열람하기에 이르렀다.
확인한 영상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마주한 A씨는 떨리는 손으로 날짜와 시간을 메모했다.
함께 영상을 보던 어린이집 원장은 메모를 빼앗아 찢고, A씨를 밀치며 CCTV 모니터를 껐다.
원장은 A씨를 협박·회유하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A씨는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2019년 11월의 일이다.
경찰은 이 어린이집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총 28건의 학대를 확인했다. 검찰에 사건을 넘겼고, 가해 보육교사 2명과 원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이 진행되던 중 1년이 지난 시점, A씨는 오랜 기간 놀이치료에도 아이가 특정 행동과 말을 반복하자 정확한 원인을 알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법원에 CCTV 열람복사를 신청했다.
A씨가 뒤늦게 확인한 CCTV 영상에는 경찰이 조사한 학대 이외에 새로운 학대 사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CCTV속 아이의 모습은 A씨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학대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이뤄졌다.
2019년 9월 5일 오후 4시. 보육교사 B씨는 아이에게 13분 동안 7컵의 물을 먹여 토하게 했다. 같은 날 담임교사 2명은 아이가 토한 물을 아이의 옷으로 대충 닦아냈다.
아이가 기저귀에 소변을 봐 옷이 젖었는데도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혔다.
나흘 뒤인 9월 9일 오후 4시에는 2명의 담임교사가 15분간 7컵의 물을 아이에게 강제로 먹이다가 아이를 데리러 온 A씨와 함께 하원하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른 날에는 보육교사가 체중을 실어 아이의 발을 2차례 꾹꾹 밟기도 했다.
추가 학대 정황이 확인됐지만 수사가 이뤄지지 않자 A씨의 속은 타들어 갔다.
학대신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수사관으로부터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처벌 관련 안내를 받은 A씨는 학대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1년을 울며 보냈다.
A씨는 지난해 12월, 선고 기일을 3일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찰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사건이 공론화하자 보육교사 2명과 원장에 대한 법원 선고를 하루 앞두고 검찰이 변론 재개를 신청해 선고가 미뤄졌다.
경찰은 재수사에 돌입했다. 재수사 과정에서 다른 피해 아동과 가해 교사들이 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피해 아동은 40여 명으로 늘어났고, 가해 교사도 원장을 포함한 3명에서 모두 11명으로 늘었다.
해당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학대 건수는 660회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지난달 9일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보육교사 B씨와 원장 등 11명의 선고공판을 진행해 B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다른 교사 3명에게 각각 징역 2년과 1년 6개월, 1년을 선고했다.
어린이집 원장에게는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벌금 7000만원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나머지 교사 6명도 비슷한 학대를 했으나 학대 행위의 정도와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해 4명은 징역 8개월·1년에 집행유예 2년, 2명은 각각 벌금 200만원과 300만원을 선고했다.
보육교사 B씨는 2019년 당시 3세 원아에게 12분 동안 7컵의 물을 강제로 마시게 해 토하게 하거나 다른 아이들이 남긴 물까지 강제로 마시게 하는 등 여러 명의 아동을 300여 차례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또 특정아동을 오랫동안 방치·배제한 채 수업을 하고, 원생에게 다른 원생을 때리도록 하거나 남녀원생의 기저귀를 벗겨 서로 마주 보게하는 등 성적인 학대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실형을 선고 받은 교사 3명도 원생의 뒷목을 붙잡고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등의 학대를 가했다.
재판부는 "보육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임에도 학대를 방조 내지 묵인하고 이에 동참했다"며 "파악된 학대 사실 이외에도 아동학대가 지속됐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은 학대 횟수가 매우 많고, 보육교사 대부분이 학대에 가담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피해 학부모들의 용서를 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해당 사건은 검찰과 징역형을 선고받은 보육교사들의 쌍방 항소로 이어진 상태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