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첫 번째 월요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이다.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제2차 유엔 해비타트 회의에서 주거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20년 후인 2016년 에콰도르 키토에서 개최된 제3차 유엔 해비타트 회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도시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들어섰지만 주거권에 대한 보호정책은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반 서민과 세입자들은 주거권이 헌법과 주거기본법 등 우리나라의 법에 보장된 당연한 권리라는 사실도 잘 모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세입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 이주비를 받고 쫓겨나야 한다. 그 돈으로는 비슷한 주거를 마련하기 어려워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전세에서 월세나 사글세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의 역사는 1988년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도입된 영구임대주택 정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19년 통계로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수는 166만호로 전체 주택의 9.2%에 달하며, 2025년에는 OECD 평균인 8%를 상회하는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한 것 같아 보이지만 유럽의 임대주택 선진국이 20~30%의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유형이 생겨나고 정책의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보금자리 주택, 뉴스테이, 시프트, 행복주택, 신혼희망타운 등 임대주택 이름은 해가 멀다하고 바뀐다. 정권에 따라 입맛에 맞는 작명을 하느라 정작 국민들은 뭐가 뭔지 잘 모른다. 이전 정권에서 추진하던 사업은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새로운 유형이 계속 등장하다 보니 서민의 입장에서 평생 꿈인 내 집 마련을 위한 장기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공공임대주택은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부 재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물량은 민간이 건설하는 분양전환 임대아파트에 의존한다. 장기임대의 경우 10년 거주 후 분양우선권을 주지만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90%에 맞추기 때문에 임대주택 거주자가 구매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무늬만 임대아파트라는 소리를 듣는다.
양적 공급의 그늘에 가려 챙기지 못했던 임대주택 노후화에 대한 장기대책도 필요하다. 영구임대주택의 경우 벌써 30년이 경과되어 시설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종합적인 개선대책 없이 부분적인 보수에 그치고 있다. 노후도에 따라 리모델링과 재건축, 전면재개발 등 적절한 방식을 적용하고 부대복리 시설도 현재의 민간분양 아파트에 준하는 시설로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얼마 전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가 국민들의 공분을 샀는데 선거철이 되니 이제는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동산 광풍에 정작 서민들을 위한 주택정책은 묻혀버려서 너무 안타깝다. 서민들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은 누가 정권을 잡든 꼭 해야 하는 정책이다. 물량에 급급하지 않고 질 좋은 장기임대주택을 필요한 지역에 공급하는 정책을 꾸준히 시행하는 길밖에 없다.
류중석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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