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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최대 격전지 울산 도산성 전투 재조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18 14:04

수정 2021.10.18 14:04

울산 중구 20일 학술대회 열어
조선, 명, 일본 3국의 시각으로 분석
1차 도산성 전투도 /사진=뉴스1
1차 도산성 전투도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울산 중구가 오는 20일 오후 2시 중구컨벤션에서 정유재란 당시 최대 격전으로 꼽히는 도산성 전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까지의 7여 년간의 전쟁을 종지부 찍는 육지 전쟁이기도 했던 도산성 전투의 참전국인 조선과 명나라, 왜(일본) 각 나라의 관점에서 당시 전투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는 행사다.

학술대회는 울산연구원 임진혁 원장의 기조강연(울산왜성과 도산성 전투)을 시작으로 주제별로 △조선이 바라본 도산성 전투 (김강식/ 한국해양대 교수) △명이 바라본 도산성 전투(김경록/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왜가 바라본 도산성 전투(한삼건/ 울산대 명예교수)에 대한 발표가 차례로 이어진다.

이어 양상현 울산대 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되며, 토론자로는 신윤호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연구원, 임상훈 순천향대 교수, 김정민 영산대 교수가 나선다.

박태완 중구청장은 “그동안 도산성 전투가 벌어진 울산왜성은 왜군에 초점이 맞춰져 조명연합군이 패전한 잔재로 인식되어왔다”면서 “이번 학술대회가 다양한 시각에서 우리 지역의 역사를 바라보고 그 의미를 재조명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찾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울산왜성
현재의 울산왜성

한편, 도산성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 10월 울산 중구 태화강 하구에 왜군이 쌍은 성이다. 이 성이 물길에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보인다 해서 도산성(島山城)으로 이름이 붙었다. 현재의 울산왜성(시 문화재자료)을 말한다. 도산성 전투는 1597년 12월~1598년 9월 사이 두 차례 벌어진 공성전이다.
두 차례의 도산성전투 결과 조명연합군은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뒤 내려진 철수령에 따라 11월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도산성을 불태우고, 서생포왜성으로 물러났다가 성을 버리고 철수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참석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해 진행된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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