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맨 처음 시도된 공중 급유는 기록상 1921년 11월 2일 웨슬리 메이, 프랭크 호크스와 얼 도허티에 의해 시도된 방법으로 스턴트에 가까운 묘기였다. 두 대의 비행기가 저속으로 날개를 맞대고 나란히 날고 있는 상태에서 조종사 후방석에 앉아있는 사람이 연료 기름통을 직접 들고 급유를 받을 기체의 날개를 통해 기어 올라가 건너편 비행기로 이동해 연료를 채워 넣어 직접 주유하는 방식이었다. 당시의 비행기는 매우 느린 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1920년대 공중급유의 초기 실험은 두 대의 저속 비행기가 편대 비행을 하면서, 한쪽에서 휴대용 가스탱크의 호스를 던져서, 그것을 다른 비행기에서 받아 연료주입구에 넣는 방식이 개발되지만 매우 위험한 방식이었다.
1935년에 프레드와 알 키 형제와 지역 발명가이자 정비공인 A. D. 헌터에 의해 새지 않는(spill-free) 재급유 노즐 The Flying Keys를 개발 상용화하는데 성공한다. 이 밸브는 연료 탱크에 삽입되지 않는 한 연료가 흐르지 않으며 노즐을 탱크에서 제거하면 연료 공급이 자동으로 멈춘다. 오늘날에도 이 노즐은 설계가 일부 개선되어 여전히 사용 중이며 특별히 설계된 공중 급유 장비를 가진 공중급유기의 개발로 최신 제트기까지 공중급유가 가능해진다.
가장 일반적인 공중급유 방식은 '플라잉 붐 방식(Flying boom)'과 '프로브 앤 드로그 방식(probe and drogue)' 두 가지다.
프로브 앤 드로그는 급유기의 급유 호스 끝에 배드민턴 셔틀콕과 같은 드로그(Drogue)를 장착해 공중급유를 하는 방식이다. 급유를 받는 항공기는 급유봉인 프로브(Probe)를 장착해 이를 드로그에 결합해 급유한다. 항공기 제작 후에도 급유체계의 추가 설치가 가능하다. 미 해군과 해병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플라잉 붐 방식은 급유기에 긴 급유 붐(Boom)을 장착해 항공기의 수유구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붐을 장착한 전용 급유기가 필요하며 항공기도 설계 때부터 수유구를 설치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미 공군만 사용한다.
한국 공군은 유럽 에어버스 디펜스앤스페이스의 A330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4대를 운영하는 데 양날개 아래 공중급유 포드(pod)와 동체 중앙의 재급유 붐을 갖추고 있다.
공중급유는 공군 군사 분야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공중을 나는 급유기에서 뻗어 나온 급유선을 정확히 잡고 다른 비행기의 연료통에 고정시키는 것은 아주 복잡한 작업이다. 항공유는 인화성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두 비행기간의 고도 속력이 정확히 조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마찰이 없어야 한다.
현재 공중급유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32개국이나 된다. 하지만 실제로 공중급유기를 잘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18개국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도 공증 급유기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최초의 공증급유기를 실전에 배치하고 가장 많은 공중급유기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독보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중 급유기는 하늘에서 다른 비행기에 기름을 전달할 수 있는 기름 탱크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공중급유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인정받고 있다
공중 급유기는 기본적으로 공중전력의 효율성을 증가시킨다. 항공기는 이착륙 시 긴 활주로가 필요하고 여러 가지 주변 환경과 조건이 맞아야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에 착륙하지 않고 공중에서 급유를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효율성을 발휘하게 된다.
두 번째는 전략을 확장시킬 수 있다. 전투기는 최대 이륙 중량 제한을 받아 무장을 한 상태에서는 기름을 충분히 싣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륙 시에는 기본 연료를 주유하고 최대의 무장과 장비를 갖춘 채 이륙한 후 공중에서 급유를 받게 되면 전투기의 중량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최대 무장을 탑재해 활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수송기로서의 임무다. 최초의 공중급유기를 폭격기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수송기를 개조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일반 여객기처럼 내부 공간이 존재한다. 덕분에 원래 본연의 임무인 공중급유의 기본 업무를 수행하고 그 외에 VIP운송이나 자국민 구출, 재해복구 등 다목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공중 급유는 전투기들이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게 한 것 말고도 손상된 전투기들이 공중급유기에 접속한 채로 공군기지에 착륙할 수 있는 위치까지 비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은 수많은 생명들을 구했고, 전장에서 공중급유기의 가장 훌륭한 사용의 한 사례였다.
포클랜드 전쟁 기간 동안 공중 급유는 대부분 핸들리 페이지 빅터(Handley Page Victor) 공중급유기에 의해 이루어졌다. 빅터 공중급유기는 영국에서 출발한 공격기, 수송기, 해상순찰기들이 중간 기착지인 남대서양의 Ascension 섬에 전개되도록 도왔다. 가장 유명한 공중 급유 작전은 Black Buck 작전이었다. 빅터 공중급유기들은 애브로 벌컨 폭격기들을 공중 급유했고, 폭격기들은 포클랜드 섬에 있던 아르헨티나군을 공격했다. 이 작전은 포클랜드에 전개되는 영국 비행기들에 대한 아르헨티나 공군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었고, 전개된 전투기들은 아르헨티나 본토의 방어선을 저지했다.
걸프 전쟁에서 사막의 방패 작전 기간 동안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 섬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군 기지로부터 미 공군의 KC-135와 KC-10 익스텐더가 전개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진한 공중급유기는, "Frisbee"라고 비공식적으로 불린,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중립지대에서 궤도비행을 하면서 연합군 비행기들을 공중 급유했다. 사막의 폭풍 작전 기간 동안 24시간의 공중 급유 지대(zone)는 밀집한 공중 작전을 도왔다.
1991년 1월 16일과 17일, 미국 루이지애나의 박스데일 공군기지에서, 사막의 폭풍 작전의 첫 전투출격이자 역사상 가장 장거리의 전투출격이 있었다. 7대의 B-52 폭격기는 35시간의 작전시간 동안 비행하면서 걸프 만에 갔다가 되돌아왔다. 이것은 공중 급유에 의해 가능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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