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들
우울증에, 입시 억압에, 친구 괴롭힘에 힘들 땐 벽장 속에 숨어 몇 시간씩 보내
작년 청년 37만4156명이 '히키코모리'
아이도, 부모도 함께 쓰러져 간다
아이는 도망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고
부모는 다른 친척, 가족에 말도 못하고
정부·지자체 법제화는 수년간 매번 실패
우울증에, 입시 억압에, 친구 괴롭힘에 힘들 땐 벽장 속에 숨어 몇 시간씩 보내
작년 청년 37만4156명이 '히키코모리'
아이도, 부모도 함께 쓰러져 간다
아이는 도망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고
부모는 다른 친척, 가족에 말도 못하고
정부·지자체 법제화는 수년간 매번 실패
그들은 어디에도 없다. 외톨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리는 모른다.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이들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지 못한다.
2005년 정부는 은둔형 외톨이를 30만명으로 추산했다.
코로나19 등 경제 악화로 은둔 현상은 더 심화됐다.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하고, 다니던 직장에서도 배제되며 외톨이들은 방문을 걸어 잠갔다.
아직 법의 테두리에선 그들을 무어라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이거 왜 취재하는 거예요?" 몇몇은 언론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잔혹한 가족범죄를 '은둔형 외톨이'에 의한 범죄로 일반화한 기사들이 많았다.
'부모와 싸운 뒤 화해하는 장면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달라'고 요구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파이낸셜뉴스는 계속 사라지는 우리 주변의 외톨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지난 6월부터 취재한 결과를 총 14화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저는 도망쳐도 진 게 아니라 살아 남은 거라고 생각해요. 방 속에 틀어박히거나, 학교를 자퇴해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으니까. 도망치지 않았으면 사는 것도 어려웠을 거예요."
지난 6월 23일 광주광역시 금남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올해 스무살인 윤진주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에 실명을 써도 괜찮은지 묻자 "혼자 있는 동안 깨달았는데 제가 괜찮아지면 제 상황을 많이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모르면 아무것도 안 변하니까"라고 말했다.
윤씨는 17세부터 19세까지 방 속에 틀어박히는 은둔 생활을 3차례나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울증을 진단받고, 힘들 땐 벽장 속에 숨어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입시를 강요하는 억압적인 분위기, 반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2학년 때 자퇴를 했다. 윤씨가 자퇴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친구들은 그 사실조차 몰랐다. 윤씨는 정신과 치료, 상담센터, 대안학교(해밀학교)를 다니며 천천히 회복했다.
"엄마·아빠가 있으면 방을 못 나왔어요. 그때는 엄마·아빠가 거실에 남긴 흔적조차 무서웠어요. 다른 사람이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고 뒷말을 하는 것 같아 모두가 역겨웠어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리를 긁는 듯한 환청으로 들리고, 창문을 보면 뛰어내릴까, 날카로운 걸 보면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인터뷰를 하고 4개월여 지난 11월 2일. 윤씨는 "직업학교를 다니며 컴퓨터 그래픽스, 웹디자인기능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파이낸셜뉴스에 전해왔다.
■통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만 18~34세 청년 3520명을 대상으로 평소 외출 정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4%(112명)가 '집에 있지만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국내 은둔청년 규모를 지난해 기준 37만4156명가량으로 추산했다. 청년 1100만4611명 가운데 3.4% 정도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2018년 건강보험공단은 잠재적 위험군을 포함해 약 21만명의 은둔형 외톨이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 차원에서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도, 개념도,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앞서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일본의 경우 '취학, 취직을 하지 않고 친구 및 동료들과의 교류 등 사회적 참여를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 6개월 이상 단절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로 정의하고 있다.
■아이도 부모도 함께 쓰러져 간다
은둔형 외톨이가 자신들의 소우주로 숨어들어가는 동안 가족의 고통도 커진다. 지난 6월 서울 홍대인근, 은둔형 외톨이 부모 모임에서 만난 10여명의 부모들은 "아이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친척, 가족들에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최모씨의 자녀는 성적이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본인을 '인간 말종'이라 여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최씨는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 뒤로 방문을 나오지 않은 지 4개월이 지났다"며 "지난해까지는 가족끼리 대화도 많았는데, 올해부터 대화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아이가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4년째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며 "요새는 '노동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학원을 다니지도 않고 주식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부모 모임을 만든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장은 "부모 모임에 용기를 내서 찾아온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을 여전히 부끄러운 부모로 생각해 자꾸 숨고 피하려 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법제화의 길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정부·지자체 차원의 법제화 움직임은 지난 수년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김미경 전 서울시의원(현 은평구청장)은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를 지난 2017년 후반에 발의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부결됐다. 2018년에는 권미혁 전 의원이 국회 차원에서 은둔형 외톨이 지원을 위한 '청소년복지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 했다. 2019년 10월에는 윤일규 전 의원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국회 회기 종료로 모두 폐기됐다.
오상빈 광주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를 정의할 때 '청소년'으로 한정해 정의하면 중장년층이 소외될 수 있다"며 "또 은둔 생활의 결과 중 하나인 '정신질환'만을 은둔형 외톨이로 정의할 경우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사회적 담론 수준에서 제도적 영역으로 처음 성공한 사례는 광주광역시다. 신수정 광주시의원은 2019년 10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통과시켰다. 한국식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의가 이뤄졌고, 지자체 차원에서 최초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가 이뤄졌다. 광주시는 2만여가구를 표본 조사한 결과 총 349명의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냈다. 광주시에 이어 부산시와 제주시도 올해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서울에서도 이르면 올해 말 은둔형 청년 지원조례가 제정될 전망이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도우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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