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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이 키워낸 해남배추…무름병 걸릴라 정성 더 쏟았죠" [현장르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1.17 17:13

수정 2021.11.17 18:46

홈플러스 사전계약 농가 전남 해남 배추산지
배추대란 이겨낸 농가
황토에 해풍…깊어진 자연의 맛
김필곤 부광농산유통 대표 만나
늦더위·장마 배춧값 60% 올라
홈플러스, 농가 29만㎡ 사전계약
좋은 품질·가격 소비자·농가 윈윈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배추산지 전경. 배추밭 너머 보이는 남해 바다에서 일년 내내 해풍이 불어온다. 홈플러스 제공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배추산지 전경. 배추밭 너머 보이는 남해 바다에서 일년 내내 해풍이 불어온다. 홈플러스 제공
"바닷바람이 키워낸 해남배추…무름병 걸릴라 정성 더 쏟았죠" [현장르포]

올해처럼 늦더위와 장마가 겹치면 배추 대부분은 그냥 버려야 돼요. 그래도 우리는 40년 농사 노하우가 있어서 버리는 배추 비율을 많이 줄였습니다."
【파이낸셜뉴스 해남(전남)=김주영 기자】 지난 12일 찾은 전남 해남군 황산면 배추산지.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의 길목에서 모처럼 초록이 가득한 풍경을 만났다. 곳곳에 진녹색의 싱싱한 배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김필곤 부광농산유통 대표이사(사진)는 올해 홈플러스와 18만㎡의 배추 납품 사전계약을 맺었다. 3.3㎡당 9~10포기의 배추가 수확된다고 하니 약 50만포기를 계약한 셈이다. 해남배추가 막 출하되는 시점인 만큼 김 대표의 농가도 배추를 수확하랴, 마저 키우랴 일손이 바빴다.


■황토 흙과 바닷바람이 키워낸 해남배추

전남에서 수확하는 배추는 국내 배추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가을 배추는 김장철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출하된다.

황산면은 남쪽과 북쪽 모두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항상 해풍이 불어온다. 김 대표가 관리하는 배추밭도 남해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어 배추가 자라는 내내 해풍을 맞으며 큰다. 잘 자란 배추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밭이랑 사이를 걸어다녔더니 황토 흙으로 신발이 금세 더러워졌다. 김 대표는 "황토 흙이라 신발에 묻은 흙이 잘 안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해남의 황토 땅과 바닷바람이 배추의 병충해를 막아준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해남배추는 해풍을 맞고 자라기 때문에 해풍에 절여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춧잎에 닿은 해수가 마르면서 배추의 단맛과 고소함이 더욱 강해지고 조직도 단단해진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특징 덕분에 해남배추로 김장을 담그면 양념에 절여도 물러지지 않고 오래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본격적인 김장철을 맞아 배추를 잘 고르는 팁도 소개했다. 즉석에서 배추 하나를 쪼개 "보통 소비자들은 속이 꽉 찬 배추를 좋아하지만 85~90% 정도 자란 배추가 가장 맛이 좋다"며 "어린 배추일수록 속이 노랗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색이 연해지면서 하얘진다"고 설명했다.

늦더위와 장마 등 이상기후로 무름병에 걸린 배추. 사진=김주영 기자
늦더위와 장마 등 이상기후로 무름병에 걸린 배추. 사진=김주영 기자

■배추농가 휩쓴 '무름병'에 '금(金)추' 대란

올해 배추 농가는 대체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수확을 앞둔 9월 초 늦더위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배추가 짓물러내리는 무름병이 발생한 것이다. 또 가을 장마까지 찾아오는 등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배추 속 안의 무름은 더욱 심해졌다. 여기에 전남 전체의 배추 밭 면적도 예년보다 10%가량 감소, 배추값은 더욱 상승했고 '금(金)추' 대란이 일어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16일 기준 가을배추(10㎏)의 평균 도매가격은 1만1240원으로 전년(7019원) 대비 60%가량 올랐다. 김 대표는 "배추 농사를 가장 힘들 게 하는 건 더운 날씨"라고 토로했다. 김 대표의 밭은 주변의 다른 밭들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올해 수율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보통 전체 밭의 90% 면적의 배추를 수확하지만 올해는 60% 정도 수확할 것 같다"며 씁쓸함을 전했다.

'농알못(농사를 잘 알지 못하는)'인 기자가 "이렇게 땅 좋고 바람 좋은 곳인데 씨만 뿌려두면 전부 다 잘 자라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배추 농사 경력만 40여년에 달하는 김 대표는 늦더위와 장마에도 배추를 잘 키워낸 비결을 소개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칼슘이나 영양제, 비료 등을 3~4회 정도 뿌리지만 우리 밭은 10회 이상 관리한다"면서 "일손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지만 좋은 품질을 유지하고 버리는 배추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두 포기만 하자 있어도 차량 전체가 돌아와"

수확한 배추는 물류 창고에서 한 번 더 품질 검수를 거친 후 홈플러스 물류센터로 배송되고, 물류센터에서 각 점포 매대로 보내진다.

김 대표는 "홈플러스가 정해놓은 납품 기준이 엄청 까다롭다"면서 "한 두 포기만 하자가 있어도 배송차량에 실어보낸 물량 전체가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농가에서 노력하는 것보다 더 공력을 들이고, 어떻게든 하자 없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내서 경쟁력을 갖추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신선식품 소싱 과정에서 '품질 검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담당 바이어가 산지를 직접 방문해 품종 선정부터 재배 단계까지 빈틈없이 확인하는 등 까다롭게 엄선한 상품만을 출시한다.
홈플러스는 올해 김 대표의 농가를 비롯해 해남 지역 배추농가와 29만㎡의 대규모 사전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김장철에 발생한 금추 대란에도 좋은 품질의 배추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일 수 있게 됐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농가와 사전계약을 맺으면 업체 입장에서는 안정된 물량을 확보받을 수 있고, 농가 입장에서도 계약 시점의 시세를 보장받을 수 있어서 서로 윈윈"이라고 설명했다.

ju0@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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