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이재명 지지율을 올리려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1.21 17:34

수정 2021.11.21 17:4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충북 청주시 육거리종합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충북 청주시 육거리종합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있다. /사진=뉴시스

이·윤 양자 대결서 열세
정책에 대한 불안도 한몫

기본소득 손절에 나서는
실용주의자 면모 보이길

"경제에, 민생에 파란색, 빨간색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유용하고 효율적이면 진보·보수, 좌파·우파, 박정희정책·김대중정책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재명 후보수락연설·2021년 10월10일)

[파이낸셜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원하자는 '고집'을 꺾었다. 이 후보는 18일 페이스북에서 "각자의 주장으로 다툴 여유가 없다"며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잘한 일이다. 나는 이걸 후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올바른 길로 가는 용단으로 보고 싶다.
이 참에 이 후보가 대표공약인 기본소득도 손질하길 바란다.

이 후보는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혔다. 경선 승리 후 컨벤션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쭉쭉 오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대조적이다. 민주당은 먼 산 구경만 한다. 오죽하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당이) 이렇게 유유자적 여유 있는 분위기는 우리가 참패한 2007년 대선 때 보고 처음 본다"고 했을까. 지지율 정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대장동·부동산이 대표적이다. 하나를 더 들라면 나는 이재명표 정책에 대한 불안감을 들겠다.

이 후보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수시로 얼굴을 붉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국책 연구소와도 서로 말이 안 통한다. 이 후보가 경제 전문가 집단과 자꾸 싸우는 모습은 불안감을 낳는다. 이재명표 기본소득이 소득주도성장 시즌2가 될까봐서다.

◇난타 당한 기본소득

이 후보와 홍 부총리는 보통 악연이 아니다. 집권당 대선 후보가 경제 사령탑을 이렇게 흔드는 걸 본 적이 없다. 경제부총리가 집권당 후보에 이렇게 맞서는 것도 처음 본다.

홍 부총리는 36년 간 경제관료로 살았다. 경제는 효율을 중시한다. 자연 가슴보다 머리가 앞선다. 그는 지난해 6월 한 강연에서 "전 세계에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가 없다"며 "의료 등 어려운 사람에 대한 지원을 다 없애고 전 국민 빵값으로 일정한 금액을 주는 것이 더 맞냐"고 반문했다.

작년 10월 당시 이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직격탄을 퍼부었다. "기본소득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기재부가 먼저 나서서 도입 논의조차 차단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12월엔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자랑이 아니라 수준 낮은 자린고비"라고 비꼬았다.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과 달리 기본소득은 국내에서조차 시나브로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둘러싼 여론은 반대가 찬성을 앞선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의 테스트판 베타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 후보가 고집을 꺾은 가장 큰 배경도 여론의 반대를 의식해서다. 한국 유권자들은 똑똑하다. 정부가 준다고 덥썩 받지 않는다. 결국 그 돈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등을 놓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자주 충돌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 등을 놓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자주 충돌했다. /사진=뉴시스


◇지역화폐도 효과 논란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이 후보와 악연이 있다. 지역화폐 때문이다. 연구원은 작년 9월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1차 보고서를 냈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어 되레 역효과가 우려된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 지사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페이스북에 '근거없이 정부 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지역화폐는 골목상권을 살리고 국민 연대감을 제고하는 최고의 국민체감 경제정책"이라며 "정부정책을 훼손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엄중 문책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때 나는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에 이 지사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걸 보고 좀 놀랐다.

사실 지역화폐 효과를 보는 시각은 도지사일 때 다르고 대통령일 때 다르다. 경기도는 부자 지자체다. 인구(1353만명·8월)도 많다. 지역화폐를 도 안에서만 쓰면 경기부양 효과가 높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오히려 손해다. 경기도민이 와서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하기 때문이다. 지역화폐 효과를 경기도에 국한하면 이 후보 말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시야를 대한민국으로 넓히면 조세재정연구원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이지 경기지사 후보가 아니다.

◇눈덩이 나랏빚 경계해야

홍 부총리가 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작년 8월 당시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을 30만원씩 100번 지급해도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 비율보다 낮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국회에서 홍 부총리에서 "아주 철없는 얘기죠"라고 물었다. 홍 부총리는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발언"이라고 동조했다. 이 지사는 곧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존경하는 홍남기 부총리님께서 '철없는 얘기'라고 꾸짖으시니 철이 들도록 노력하겠다"며 가시돋친 반응을 보였다.

말실수는 했지만 사실은 본심을 드러냈을 뿐이다. 홍 부총리 스스로 국가채무 방어벽을 허물어뜨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문재인정부 들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 저항선이 속절없이 뚫렸다. 올해는 47%대로 예상된다. 현 추세가 꺾이지 않으면 2025년께 60%에 육박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나랏빚 증가 속도가 선진국 35개국 중 가장 빠르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경제 관료는 체질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중시한다. 그 덕에 한국은 주요국 중 국가채무 비율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칭찬은 못할 망정 이걸 자린고비라고 비꼴 일은 아니다. 기재부는 지난 8월 올 2차 추경을 짤 때 국채 2조원어치를 매입했다. 그만큼 나랏빚이 줄었다. 나라살림을 꾸리는 기재부가 긴축 본색을 드러냈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올해는 세수가 풍년이다. 홍 부총리는 "다 쓸 데가 있다"고 했다. KDI는 지난 11일 '2021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도 재정정책은 경기부양보다 피해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경제구조 전환 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10월25일)에서 "정부는 추가 확보된 세수를 활용해 국민들의 어려움을 추가로 덜어드리면서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활용함으로써 재정건전성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홍 부총리의 철벽방어 앞에서 좌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5일 대구 경북대학교 인문학 진흥관에서 열린 제20회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 '에서 "나는 실용주의자"라며 "좋은 정책이면 김대중 정책, 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5일 대구 경북대학교 인문학 진흥관에서 열린 제20회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 '에서 "나는 실용주의자"라며 "좋은 정책이면 김대중 정책, 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진=뉴스1


◇이재명식 실용주의 보여달라

나는 복지를 넓히려는 이 후보의 정책 방향에 공감한다. 한국은 양극화가 제일 심한 나라로 꼽힌다. 이래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누구든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복지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그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 데는 공감하기 어렵다. 벌써부터 기본소득은 부작용이 크다. 이 후보는 재원 조달 수단으로 국토보유세(기본소득토지세), 탄소세 신설을 제시한다. 지금도 부동산 세금 때문에 아우성인데, 세목 신설이 과연 가능할까.

박스권 지지율은 이재명표 기본소득이 대선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이 후보는 "경제에, 민생에 파란색, 빨간색이 무슨 상관인가"라고 했다. 중국 경제개혁을 이끈 덩샤오핑은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이 후보가 실용주의를 실천에 옮길 기회다. 경제에, 민생에 도움이 된다면 파란색 보수 정책도 마다하지 않길 바란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한 고집을 버린 것처럼 기본소득 고집도 버리길 바란다. 대선까지 넉달가량 남았다.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다. 기본소득을 대체할 공약을 개발하기엔 넉넉하다.
적어도 나는 이 후보가 왔다갔다한다고 비판하지 않겠다. 잘못은 빨리 바로잡는 게 상책이다.
황소고집은 후보 본인은 물론 국가 경제, 민생에도 마이너스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이재명 지지율을 올리려면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