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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힘들어도 사직 못하는 '근로계약서'…23세 간호사 극단으로 몰았나

뉴스1

입력 2021.11.23 05:01

수정 2021.11.23 11:41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기숙사에서 지난 16일 오후 1시께 숨진 채 발견된 23세 간호사와 파트장의 대화 © 뉴스1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기숙사에서 지난 16일 오후 1시께 숨진 채 발견된 23세 간호사와 파트장의 대화 © 뉴스1


A간호사와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의 근로계약서 '특약사항' © 뉴스1
A간호사와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의 근로계약서 '특약사항' © 뉴스1


경기 의정부시의 대학병원에 입사한 지 9개월여 만에 기숙사에서 숨진 23세 간호사의 빈소가 이 병원에 마련됐다. 고인은 숨지기 전 '다음달부터 병원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혔으나 '퇴사는 60일 전에 얘기해야 한다'는 대답과 함께 '더 일해달라'는 말을 듣고 극심한 좌절감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 뉴스1
경기 의정부시의 대학병원에 입사한 지 9개월여 만에 기숙사에서 숨진 23세 간호사의 빈소가 이 병원에 마련됐다. 고인은 숨지기 전 '다음달부터 병원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혔으나 '퇴사는 60일 전에 얘기해야 한다'는 대답과 함께 '더 일해달라'는 말을 듣고 극심한 좌절감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 뉴스1


(의정부=뉴스1) 이상휼 기자 = 사회초년생 23살 간호사가 대학병원 기숙사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 유가족들은 불공정한 근로계약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간호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당일 아침 상사에게 사직의사를 밝혔으나 60일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노동법 전문가들은 퇴사를 마음 먹는 근로자는 사직 의사표현을 한 다음날부터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숨진 간호사의 유족들은 23일 누구든 사직을 원할 경우 즉각 퇴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장 상사 등이 제대로 알려줬다면 피할 수 있는 죽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생인 A간호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뒤 올해 3월2일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에 취업해 병동에서 근무해왔으며 지난 16일 오후 1시께 기숙사 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 혐의점은 없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A간호사는 사망 당일 오전 9시21분께 직장 상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음달부터 그만두는 것은 가능한가요'라고 물었으나, 상사는 '사직은 60일 전에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화가 종료되고 2시간 뒤 A간호사는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빈소에서 기자와 만난 유족은 "병원 위주의 근로계약서다. 이 계약서를 본 주변인들도 이런 계약서는 처음 본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주장했다.

유족이 제시한 A간호사(근로계약자)와 의정부을지대병원(사용자)의 근로계약서는 '본인은 학교법인 을지학원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노동법령과 병원의 취업규칙 등 제규정을 성실하게 준수할 것을 서약하며, 만일 본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병원에 손해를 끼쳤을 때에는 그에 대한 책임질 것을 확약하고 아래와 같이 근로계약을 체결합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특히 특약사항으로 인해 A간호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특약사항은 ①근로계약자는 제9항에 따른 사용자의 계약해지 등이 없는 한 계약체결일로부터 최소 1년 근무할 의무가 있다 ②근로계약자는 현재 타병원에 이중으로 합격한 사실이 없으며 향후 이중 합격한 병원에 입사하기 위해 사직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다 ③근로계약자가 사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최소 2개월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 등의 문구로 구성됐다.

④항은 '근로계약자가 위 ①·②·③항을 위반하여 병원에 손해 및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됐다.

이 계약서에 대해 김인식 유한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병원 편의적으로 작성된 근로계약서다. 가장 큰 문제는 특약사항에 있는 '2개월 전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문구다. 노무사 생활 십수년 하면서 처음 보는 사례"라고 밝혔다.

특히 "근로계약서 특약사항을 위반하면 병원에 손해배상 책임 있다는 문항이 있다. 이는 사회초년생인 A간호사에게 굉장히 심적 부담을 줬을 것이다. '병원에서 나한테 손배소 청구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병원은 사용자로서 부담해야 할 절차적 정의와 근로자에 대한 배려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그만둔다는 의사표현을 아무 때나 할 수 있고, 사용자가 사표수리를 하지 않을지라도 한달 뒤에 효력이 발생한다.

김 노무사는 "A간호사는 카톡으로 그만둔다고 의사표현했기 때문에 당장 그 다음 날부터 직장에 안 나가도 됐다"면서 "A간호사가 법적인 상담을 받거나, 누군가 '내일부터 안 나가도 된다'고 한마디 말이라도 전달해 휴식할 수 있게 해줬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인재(人災)다"고 말했다.

올해 이 병원에 입사했다가 퇴사한 바 있는 한 간호사(20대)는 "A간호사의 빈소에서 만난 동료 간호사들도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개선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직 관련 2개월 유예 특약사항'에 대해 의정부을지대병원 관계자는 "간호사 사직 및 인력수급의 어려움은 공공연하게 발생되고, 이로 인한 업무공백은 환자 생명 및 안전 위협에 직결될 수 있으므로 서면으로 경각심을 주기 위해 기재했다.
실제로 당사자가 사직을 원할 경우 기한에 상관없이 모두 사직처리한다. 추가적인 책임을 부여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을지재단 관계자는 "이번 사건 관련 다수 선량한 현직 간호사들의 명예가 손상당할 우려가 있고 2차·3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경찰 수사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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