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순천=황태종 기자】전남 순천시에서는 누구나 책을 펴내는 시민작가가 될 수 있다.
순천시가 도서관 정책 목표를 '전 시민 책 쓰기 문화 조성'으로 정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책 출판 지원과 책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다.
실제 순천에선 지난 11월 11일 하루 동안 시민 1540명이 책을 출간했다. 이는 '단일 지방자치단체 거주 시민 최다 동시 출판' 분야의 최고 기록으로 공식 인증(기네스 기록)을 받았다.
순천시가 작가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데 힘쓰면서 순천이 '누구나 책 쓰는 시민작가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순천시는 내년 상반기에 미국 WRC(World Record Committee, 세계기록위원회)의 세계 기록 도전도 앞두고 있다. 2023년에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신청을 할 계획이다.
■문학적 자산이 많은 도시, 순천
순천시는 문학적 자산이 많은 도시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달은 많은 한학자를 배출했는데, 특히 순천지역은 1500년 이후 유학적 지식을 갖춘 지식층과 유배객들에 의해 시문학이 발달했다. 지역 출신으로 승평사은과 승평팔문장 및 '강남악부'의 저자 조현범(1716∼1790)이 있다. '강남악부'는 순천지역 인물·역사·문화·전설·설화 등을 악부시의 형식으로 정리해 지역사 사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조위(1454∼1503)가 쓴 '만분가'는 유배가사의 효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와선 순천지역 근현대문학의 출발을 알린 임학수(1911∼1982)시인이자 평론가를 시작으로 어른 동화시장을 개척한 정채봉(1946∼2001), 소설 '무진기행'의 김승옥, 1000만 스테디셀러 작가 조정래, 리얼리즘의 대가 서정인 소설가와 허형만 시인, 서정춘 시인, 순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순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재구 시인 등 수많은 문호를 배출했다.
순천시는 특히 지방도시의 인구 규모에 비해 도서관이 많다.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을 비롯해 공공도서관 8개소와 작은도서관이 91개가 있으며, 현재 건립 중인 공공도서관도 2개소가 된다. 시민 1인당 장서 수는 4.1권이다. 도서관 이용자 수는 연간 90만여명이다. 도서관 프로그램 이용자 수는 연간 9만5000명에 이른다. 이러한 순천시의 문학적 기반과 역량이 시민의 삶 속에 문학적 감수성을 자리잡게 했다는 평가다.
■전국에서 작가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순천
순천시의 도서관에서 책 쓰기 사업은 지난 2017년 그림책도서관에서 '시민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비롯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순천 소녀시대'가 탄생했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 20명으로 구성된 '순천 소녀시대'는 2019년 에세이집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출간했다. 가난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1만9000권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가 됐다.
순천시는 이어 2019년부터 1인 1책 쓰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린이부터 시작해 청소년, 성인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책 쓰기 프로그램과 책 출판 지원 사업을 실시하며 시민 작가들을 양성했다. 지난해에는 시민과 직원에게 출판 비용 일부와 출판 원고 교정 등 출판 지원을 했고, 시립도서관 6개소, 작은도서관 7개소, 지역서점 5개소, 초·중·고 17개교에서 책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시는 지난 11월 11일 1540명의 시민들이 인쇄본 911종, 전자책 252종 총 1163종의 책을 동시 출판하는 성과를 거뒀다. 최연소 시민 작가의 나이는 만5세, 최고령 시민작가는 만87세로 거의 모든 연령의 시민들이 책 출판에 참여했다.
■도서관에 시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도시, 순천
순천시립삼산도서관은 '순천사람들이 쓰고 함께 읽는 책' 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순천에 살고 있는 사람, 순천이 고향인 사람들이 출판한 책을 모아든 공간이다. 현재 520여명이 쓴 1400여종의 책이 비치돼 있다.
삼산도서관은 순천사람들이 쓴 책 외에도 전 시민, 유관기관·단체, 출향인사 등을 대상으로 순천 인물에 관한 자료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순천시는 내년 준공 예정인 신대도서관에 별도의 인물자료실을 조성해 보관할 계획이다.
■2023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목표 도시, 순천
순천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문학 분야 도전을 준비 중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는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문화 다양성을 위한 국제연대 사업이다. 현재 문학 분야는 세계 27개국 39개 도시가 가입해 활동 중이며, 우리나라 도시로는 부천, 원주가 가입했다.
순천시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가입이 순천의 문학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 문학공동체 육성, 문학관광 발전과 문학 대중화, 국제 네트워크를 증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석 순천시장은 "책 읽는 도시, 도서관의 도시는 많지만 시민이 책을 쓰는 도시는 많지 않다"면서 "누구나 책을 쓰는 시민작가를 배출해 순천 시민이 쓴 책으로만 돼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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