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 짜리 김치찌개 식당 운영 ‘투잡’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 마음 활짝 열려"
"몸과 마음 추스려 두번째 인생 여는 곳"
30년째 노숙인 무료급식 ‘안나의 집’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 마음 활짝 열려"
"몸과 마음 추스려 두번째 인생 여는 곳"
30년째 노숙인 무료급식 ‘안나의 집’
바쁜 삶에 치여 그간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를 살피고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12월은 사랑과 봉사의 정신이 이렇게 자주 뉴스거리가 되는 유일한 달일 것이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경건하고 엄숙해지는 연말, 따뜻한 밥의 온기로 누구보다 앞장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하는 두 신부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웨일북 펴냄)의 저자 이문수 신부는 점심이 되면 사제복을 벗고 앞치마를 입는다. 성북구 정릉동에서 5년째 운영되는 청년밥상 '문간'을 경영하는 일이 그의 다른 직업이다.
'문간'의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로 단촐하다. 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가는 뜨거운 김치찌개의 가격은 고작 3000원. 2017년 그가 '문간'을 연 이후로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밥을 무한리필로 제공하면서 이처럼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단순하다. '문간'이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6년 전 겨울, 고시원에서 지병과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외롭게 사망한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밥상 '문간'은 그 청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청년의 고독사 소식을 접하고 이문수 신부는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청년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문간'의 문을 열었다. 봉사의 개념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가난한 수도자에게 창업은 쉽지 않았다. 재정 문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믿었던 청년들에게 상처를 입으면서도 이문수 신부가 의연하게 식당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가진 지극한 사랑의 마음 덕분이다.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를 통해 마음이 활짝" 열리고, "그러한 모임이 고립되어 외로운 인간을 살릴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이문수 신부는 오늘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김치찌개를 끓인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마음산책 펴냄)를 집필한 김하종 신부도 이문수 신부처럼 밥을 통해 취약계층에게 따스함을 전하고 있다. 그가 경기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온지도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김하종 신부의 본명은 빈첸조 보르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87년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봉사의 정신 하나로 연고도 없는 대한민국에 발을 내딛었다. "이 땅의 민족이 내 민족"이라는 고백과 함께 사제생활을 시작한 김하종 신부는 상처에서 구더기가 끓고 오물과 뒤엉켜 살아가는 노숙인들을 만난 후 이들을 섬기기 위해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열었다.
김하종 신부도 '안나의 집'을 운영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운영을 시작했을 때 그는 남는 밥이 있는 곳이라면 사찰부터 시장까지 가리지 않고 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준비했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소외된 이들의) 상처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치유해주기 위해서"라는 김하종 신부의 마음에 새 사람이 되는 것으로 화답한 이들도 많았지만 그의 마음을 배신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에게 다치고 깨지면서도 김하종 신부가 계속 밥을 짓는 이유도 이문수 신부와 같다. 지극한 사랑 덕분이다.
"더는 아무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모두 안전하고 양지바른 공터로 나와 누워 쉴 수 있도록 애써주는 게 나이를 아주 조금 더 먹은 어른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이문수 신부와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두번째 인생을 열 수 있는 곳,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발걸음을 한 발 내딛는 곳, 삶이 허무하게 버려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곳이 안나의 집"이라는 김하종 신부의 삶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스스로를 희생하며 조건 없는 나눔을 지속하는 이들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경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들의 선함은 가장 낮은 자리를 비추는 등불이자 한국 사회가 따라가야 할 횃불이다. 이 두 책과 함께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는 연말이 되면 좋겠다.
한지수 교보문고 MD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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