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책임제를 채택한 독일은 다당제 전통이 뿌리 깊다. 이념이 다른 정당들 간에도 수시로 연정이 이뤄졌다. 소수당인 자민당 소속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교장관이 연정의 대표적 수혜자였다. 그는 사민당 정권부터 기민당 정권까지 18년 재임하며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됐다. 숄츠 총리도 2018년부터 기민당·사민당 연립내각 부총리였다.
지난 총선이 간발의 의석차로 판가름 나면서 그간 다양한 연정 시나리오가 거론됐었다. 사민당에 근소하게 뒤진 기민당(CDU)·기독사회연합(CSU)은 '자메이카 연정'으로 맞불을 놨었다. 검정색이 상징인 두 당과 녹색당(초록), 자민당(노랑) 간 연정으로, 자메이카 국기색에 빗댄 명칭이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사민당·기민당 대연정이 남은 대안이었다.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던 녹색당과 자민당이 '신호등 연정'을 택하면서 앞으로 이들의 발언권이 커질 전망이다.
이는 역으로 녹색당과 자민당 간 불협화음이 빚어질 공산도 크다는 뜻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따른 대응 과정이 이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두 사안 모두에서 환경과 인권 등 가치 외교를 중시하는 녹색당은 적극적인 반면 기업친화적인 자민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미국이 러시아 압박용 노르드스트림2 가스관 중단 카드를 빼들 경우 연립내각에 비상 점멸등이 켜질 소지도 크다. 결국 '신호등 연정'의 순항 여부는 중도 실용주의자인 숄츠의 좌우를 아우르는 정치력에 달렸다고 봐야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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