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서 가상화폐 보상 첫 판결
금전 환산땐 1심보다 10배 늘어
"비트코인 인도로 채무 이행 해야"
'가상화폐=물건'은 또 인정 안돼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오출금 사고 피해자에게 '가상화페' 자체로 반환하라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사고일 종가 기준으로 산정된 금액으로 배상 결정이 내려졌던 1심보다 10배 정도 늘어난 금액을 돌려받게 됐다. 최근 가상화폐 관련 법정 다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항소심에서 '가상화폐'로 직접 보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첫 사례다.
금전 환산땐 1심보다 10배 늘어
"비트코인 인도로 채무 이행 해야"
'가상화폐=물건'은 또 인정 안돼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9-1부(정승규·김동완·배용준 부장판사)는 A씨가 빗썸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씨에게 오출금됐던 5.03비트코인(BCT)을 인도하라'고 선고했다.
비트코인 반환이 어렵다면, 1비트코인 당 5428만원의 비율로 환산한 돈을 지급하라고도 했다. 이는 소송 변론종결시점인 올해 9월 23일 기준 비트코인 시세를 적용한 것으로, A씨는 총 2억7300여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A씨는 지난 2018년 11월 22일 자신의 계정에 있던 5.03비트코인을 빗썸에서 타 거래소로 송금하기 위해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던 주소로 출금요청했는데, 그가 요청하지 않은 정체 불명의 다른 주소로 출금이 되자 빗썸 콜센터와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
당시 빗썸측은 "빗썸에서 공식적으로 잘못했다고 하기 좀 그렇기는 한데, 어쨌든 원인은 저희가 맞다. 회원님의 실수나 잘못이 아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등 오출금된 비트코인을 반환해 주겠다는 취지로 안내했다. 그러나 피해 보상을 놓고 빗썸과 의견이 엇갈리면서 A씨는 결국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은 가상화폐가 반환의 기준이 되는 임치계약상 '물건'으로 볼 수 있는가가 쟁점이었다. 임치계약은 수치인이 임치인인 상대방을 위해 위탁받은 것을 보관하기로 하는 것으로, 그 기준이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으로 규정되어 있다. 즉, 금전이나 유가증권이 아닌 가상화폐를 고스란히 돌려받으려면 법정에서 '물건'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가상화폐는 '물건'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일종의 전자정보로 물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법원 판단이다. 이에 따라 1심은 빗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배상 금액을 사고일 종가 기준(516만원)으로 산정해 2595만원으로 환산했다.
다만 2심은 빗썸과 A씨 간 계약을 유상임치계약의 성질을 가지는 비전형계약으로 인정, 빗썸이 A씨가 요청한 '잔고 출금 이전'을 완료하지 않았다고 보고 '비트코인' 자체를 반환할 것을 명령했다.
2심은 "빗썸은 A씨가 출금을 요청한 주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하기 전에 멸실, 훼손 등 사정이 발생했더라도 A씨에게 동종, 동질, 동량의 비트코인을 다시 조달해 이전하거나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채무 이행에 필요한 행위를 완료했다고 볼 수 없는 만큼 비트코인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A씨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동인 서기원 변호사는 "가상화폐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천조원이 거래되는 거대 시장임에도 명확한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다보니 피해보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판결은 금전 환산이 아니라 원물로 반환하라는 항소심 첫 판례로 이를 통해 법원 기준을 쌓아간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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