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2022대선지식창고] 최초, 최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1 15:41

수정 2021.12.21 18:08

최초를 찾아라!
최초 기록을 가진 사건, 대통령은 누구?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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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최초는 언제나 마음을 뜨겁게 달굽니다. 최초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니까요. 역사 속 대통령들은 어떤 '최초' 기록을 남겼을까요?

1. 경무대 시대는 저물었소, 이제 청와대의 시대올시다!
-'청와대'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윤보선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1962, 공공누리 제3유형 개방, '윤보선 대통령 청와대기자회견(1962)'
©대통령기록관, 1962, 공공누리 제3유형 개방, '윤보선 대통령 청와대기자회견(1962)'

청기와로 지붕을 얹은 건물, '청와대(靑瓦臺)'. 외관과 이름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마치 이름을 먼저 정한 후 건물을 지은 것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사실 청와대라는 이름은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최초로 사용했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총독 관저로, 광복 이후 미군 군정 관저로 사용하던 곳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며 새롭게 이름 지었습니다. 이름은 '경무대(景武臺)'. 경복궁의 '경'과 신무문의 '무'를 따온 것이죠. 안타깝게도 경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제2대, 제3대 대통령을 역임하는 '독재의 산실'로 여겨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조선총독부 협력 인사 처벌을 반대하거나,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 3·15 부정선거를 일삼는 등 독재를 마다치 않은 덕입니다.


이에 제4대 대통령에 오른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경무대라는 이름 자체를 삭제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청와대'라는 이름을 붙였죠. 미국 대통령의 관저, 백악관(화이트 하우스, The White House)처럼 건물의 외관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직관적인 이름으로요. 그 이름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대통령 관저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2. "재인아 그래서 너 나랑 결혼할 거야, 말 거야?!" -김정숙 여사 曰
-국내 최초, CC 출신 대통령 부부로 거듭난 두 청춘의 이야기

ⓒ뉴스1, 2019년 11월
ⓒ뉴스1, 2019년 11월

제17대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학교 법학과 72학번,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같은 학교 성악과 74학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CC(Campus Couple)' 출신 부부인 것이죠. 서로를 향한 애정과 지지를 꾸준하게 드러낸 두 사람은 국민들이 엄마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러브 스토리를 자랑합니다. 김정숙 여사는 대학 축제에서 소개로 만난 문재인 대통령의 첫인상이 퍽 실망스러웠다고 했는데요.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 대표 미남 배우 '알랭 드롱'을 닮았다고 들었건만, 후줄근한 모습으로 털레털레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성적 감정이 들지 않아 가벼운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에 그쳤다고 하죠.

하지만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건을 겪으며 사랑의 싹을 틔우게 됩니다. 1975년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는데요. 눈을 떠보니 김정숙 여사가 자신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던 것이죠.

이후 김정숙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강제 징집으로 특전사에 배치될 때, 제대 후 고시 공부를 할 때도 곁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결혼에 골인했죠. 김정숙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결혼한 것을 두고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음악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줄 것 같아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칼바람이 아닌 따뜻한 태양이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전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2000,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차 회담'
©대통령기록관, 2000, 공공누리 제 3유형 개방,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차 회담'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거부가 된 알프레드 노벨(Alfred B. Nobel)의 유언으로 탄생했습니다. 1901년부터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 6개 부문에서 인류 문명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해 상을 수여합니다.

수상자로는 방사능 원소를 발견한 과학자 마리 퀴리, 「노인과 바다」 등 희대의 명작을 남긴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프리카 원주민 의료 질을 향상한 의사이자 선교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12월 10일,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 및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헌신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특히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펼친 햇볕정책은 수상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햇볕정책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강한 바람(강경 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유화 정책)이라는 이솝우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당시 북한은 과도한 군비 지출, 김일성 주석 사망, 식량 위기가 맞물린 상황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상황이 혹한기나 다름없었죠. 김대중 정부는 북한이 개혁을 통해 개방의 길로 나설 수 있도록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교류와 협력을 적극 확대했습니다. 포용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인데요. 남북한 비료 협상, 정주영 명예회장 북한 방문, 금강산 관광 개발 사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4. 때로는 자랑스러웠고, 때로는 부끄러웠던 최초의 기록
-최초 여성 대통령 박근혜, 최초 탄핵에 이르기까지

ⓒ뉴스1, 2017년 9월
ⓒ뉴스1, 2017년 9월

2016년 초겨울, 광화문 광장에 심지처럼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촛불을 든 국민이 모였습니다. 국민은 외쳤습니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청와대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라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품고 제18대 대선에 새누리당 대표로 출마했죠. '부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과 유력한 '여자' 후보라는 사실이 세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국 그는 문재인 당시 후보를 이기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에 이어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임기 약 1년을 앞둔 시기, 논란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정유라 씨 특혜 고발 사건이었습니다. 정유라 씨가 대통령 최측근인 최순실 씨의 자녀라는 이유로 부정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국정을 둘러싼 비리가 속속 공개됐죠.

전국은 충격에 휩싸였고, 국민은 각자의 자리에서 화(火)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탄핵소추안이 타결됐습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부녀 대통령으로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자랑스럽게 장식했던 그, 초라한 기록을 남기며 청와대를 떠나야 했습니다.

'최초'를 이루며 나아가는, 욕심 있는 민족 '대한민국'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우리나라 역사에는 다양한 '최초'의 사건이 존재합니다.
물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죠. 수많은 최초가 모여 지금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지난날 이뤄낸 최초의 순간들을 기억하나요? 여러분도 최초의 기록을 가진 단 한 명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cyj7110@fnnews.com 조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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