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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안 ‘갯벌어로’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0 09:16

수정 2021.12.20 09:16

고흥 득량만의 밀대그물로 젓새우(김장새우)를 잡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고흥 득량만의 밀대그물로 젓새우(김장새우)를 잡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뉴스] 서·남해안의 갯벌에서 나타나는 어로와 관련된 전통지식과 어촌 공동체의 문화인 ‘갯벌어로’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갯벌어로’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다만, 갯벌어로는 갯벌이 펼쳐진 한반도 서·남해안 전역의 갯벌 어민들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갯벌어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갯벌이 펼쳐진 한반도 서·남해안전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점, △조선 시대 고문헌에서 갯벌에서 채취한 각종 해산물을 공납품으로 진상했던 기록이 확인되는 점, △갯벌어로 기술의 다양성은 학술연구 자료로서 그 가치와 가능성이 높다는 점, △갯벌어로와 관련된 생산의례와 신앙, 놀이는 우리나라 갯벌어로의 고유한 특징인 점, △갯벌의 지질별 어로도구의 다양성과 지역별 갯벌어로의 특색이 뚜렷한 점, △현재에도 갯벌이 넓게 펼쳐진 서·남해안 마을 대부분이 어촌 공동체(어촌계)를 중심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이번 지정 대상은 전통어로방식 중 ‘갯벌어로’로, 맨손 혹은 손도구를 활용해 갯벌에서 패류·연체류 등을 채취하는 어로 기술, 전통지식, 관련 공동체 조직문화(어촌계)와 의례·의식이다.


옛 노두의 신행길을 재현 /사진=문화재청
옛 노두의 신행길을 재현 /사진=문화재청

갯벌은 예로부터 어민들에게 ‘갯벌밭’·‘굴밭’으로 불리는 등 농경의 밭에 상응해 ‘바다의 밭’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갯벌을 공동재산으로 여겨 마을 사람들이 함께 관리하는 등 현재에도 어촌공동체(어촌계)를 중심으로 어민들 생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조개, 낙지, 굴,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의 보고(로서 한국 음식문화의 기반이 되어왔다.

갯벌어로 방식은 기본적으로 맨손과 다양한 손 도구를 이용하는데, 조류와 해류, 지질 등 해역에 따라 다양한 어로 기술이 있고 모래갯벌, 혼합갯벌, 펄갯벌, 자갈갯벌 등 갯벌 환경에 따라 어로 방법과 도구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펄갯벌의 뻘배(널배), 모래갯벌의 써개·긁게·갈퀴, 혼합갯벌의 가래·호미·쇠스랑, 자갈갯벌의 조새 등이 대표적이고 오랜 세월 전승되면서 같은 도구라도 지역별로 사용방법이 분화된 것이 특징이다.

같은 패류·연체류라고 해도 지역별로 어획방법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모시조개(가무락)는 갯벌의 종류에 따라 호미를 사용하여 캐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맨손으로 캐는 지역이 있다.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이동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이동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펄갯벌은 모시조개 숨구멍을 눈으로 확인하기 쉽고 맨손으로도 작업이 용이하지만 모래갯벌의 경우에는 모시조개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민들은 호미로 갯벌 바닥을 두드려 그 진동에 놀란 모시조개가 물을 뿌리거나 입을 벌리는 것을 보고 그 위치를 확인한다. 이를 두고 어민들은 ‘눈을 뜬다’라고 한다.

우리나라 갯벌어로의 역사를 살펴보면 갯벌어로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헌은 확인하기 힘들지만, 서·남해안에서 발굴된 신석기·청동기·철기·고려 시대 패총에서 갯벌에서 채취한 참굴, 꼬막, 바지락 등 패류가 다량으로 확인됨에 따라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갯벌에서 채취되는 각종 패류·연체류 등은 조선 후기 문신인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 관련 기록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갯벌어로와 관련된 생산의례와 신앙, 놀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고유한 문화로 대표적인 공동체 의례로는 ‘갯제’가 있다. 갯제는 ‘조개부르기’, ‘굴부르기’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갯벌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며 동네 주민들이 조개나 굴 등을 인격화하여 갯벌에 불러들이는 의식이다.

이외에도 풍어를 예측하는 ‘도깨비불 보기’와 굴과 조개를 채취한 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노는 ‘등빠루놀이’도 우리나라 갯벌의 풍습과 전통문화를 잘 보여준다.

뻘배를 이용해 갯벌로 이동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뻘배를 이용해 갯벌로 이동하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우리나라 서남해안 지역은 풍어와 조업의 안전을 위해 갯벌 어장고사로 ‘도깨비 신앙’이 활발하게 전승되어 왔다. 예컨대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 갯벌의 구멍에서 ‘뿅뿅’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를 어민들은 도깨비가 걸어가면서 생긴 소리라고 생각했다.

갯벌 내 어류활동을 도깨비가 관장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어장고사’를 지낼 때 중요한 제물(祭物)로 메밀범벅이나 메밀묵을 올렸는데 이는 도깨비가 메밀 냄새를 좋아한다는 설(說)에 따른 것이고 이에 따라, 어장고사를 ‘도깨비고사’라 부르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 갯벌의 생태·사회·문화 가치가 재조명되고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갯벌도립공원 등으로 지정되는 사례가 증가했다.
지난 7월에는 신안, 고창, 보성·순천, 서천 등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갯벌어로를 전승하고 있는 지역의 어촌공동체가 갯벌과 갯벌어로의 지속을 위해 자율적으로 금어기 설정과 치어 방류 등을 진행하는 등 전승 활성화 의지가 높다.


갯벌어로를 통해 자연을 채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는 대상으로 보는 전통적 자연관을 살펴볼 수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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