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터키 리라화가 하루 동안 지옥과 천당 사이를 오갔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리라화는 사상 최대폭으로 폭등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종잡을 수 없는 정책의지를 발산하며 리라화는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아찔한 환율 널뛰기…에르도안, 리리화 예금보호 약속
20일(현지시간) 달러/리라화 환율(리라화 가치와 반대) 11% 폭등해 18.4리라까지 치솟으며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하지만 터키 금융시장이 대부분 종료된 이후 달러/리라 환율은 25% 폭락하며 13.15리라로 주저 앉았다.
리라화 가치는 1983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일일 최대 상승폭으로 뛰었다. 환율은 12.28리라까지 고꾸라지면서 리라화 가치는 47% 폭등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늦게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부가 환율 급등에 따른 리라화 예금가치 손실분을 보전하겠다고 밝힌 덕분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내각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터키 국민이 달러 대비 리라화의 붕괴를 우려해 리라화를 달러와 같은 외국환으로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예금자 보호를 약속했다.
그는 "환율 상승을 우려하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금융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융제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될지는 확인하지 않은채, 리라화 예금보호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자신의 저금리 정책을 재차 홍보했다. 그는 "금리를 낮춰 인플레이션이 몇 개월 안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라며 "이 나라는 높은 금리로 돈을 버는 이들에게 더 이상 천국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돈과 금융 접근성이 있는 모든 이들이" 투자에 기여해야 한다며 수출기업과 연금수급자를 지원할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실행 신뢰 미지수…쇼트커버링 일시적 효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국내 투자자들의 달러 수요를 줄이고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환율 요동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 터키 투자자들이 이번 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는 "리라화 폭등은 터키의 일반적 영업시간 이후 나타났다"며 현지 트레이더들이 유입됐을 때도 리라화가 상승탄력을 계속해서 유지할지를 두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리라화가 요동친 것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연휴를 앞두고 줄어든 거래량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에르도안의 예금보호 조치가 "리라화를 지지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정책 신뢰도라는 관점에서 실제 실행될지를 예금자들이 믿을지는 미지수"라고 웰스파고의 브렌단 맥케나 환율전략가는 말했다. 그는 "당장 현재로서는 터키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에 터키 외환시장에서 10억달러가 매도되면서 시장에 그만큼 달러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이는 외국인들의 쇼트 커버링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예상과 달리 리라화가 오르면 리라 하락을 베팅한 포지션은 손실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리라화가 더 오르기 전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리라를 매입해 포지션을 연장 혹은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리라를 매수하고 달러가 매도된 것이다.
리라화 쇼트가 매우 극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스코티아뱅크의 숀 오스본 최고FX전략가는 말했다. 그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환율 폭등에 따라 국내 투자자 예금을 보호하겠다고 밝히면서 (리라) 쇼트 커버링이 촉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리라화 45% 폭락…저금리로 내년 인플레 30%
이날 하루만 볼 때 리라화는 폭등했지만 올해 전체로 보면 달러 대비 여전히 45% 떨어진 상태다. 21%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인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압박에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9월 이후 기준금리를 500베이시스포인트(bp, 1bp=0.01%p) 낮췄고 리라화는 20년 만에 최악의 환율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5주 동안에도 리라화는 거의 40% 무너졌다.
터키에서 금리가 계속 떨어진다면 앞으로 변동성도 심해져 예금보호 조치에도 리라화에 대한 사상 최저 베팅이 이어질 것이라고 오안다증권의 에드워드 모야 시니어 마켓애널리스트는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저금리 정책으로 내년 인플레이션은 30%를 뛰어 넘을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른다. 스위스쿼트뱅크는 현재 터키 경제를 "브레이크 없는 트럭"에 비유하며 "터키가 규칙에 따른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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