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친부모가 살아있는 경우라도,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조부모가 손주를 자녀로 입양할 수 있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A씨가 낸 미성년자입양허가 소송의 상고심에서 입양을 불허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의 딸 B씨는 고등학생 때 C군을 출산했다. B씨는 출산 직전 혼인신고를 했으나 C군이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협의이혼했다.
C군이 7개월이 됐을 무렵 B씨는 아이를 못 키우겠다며 부모 집에 아이를 두고 갔고, A씨 부부는 이때부터 C군을 양육했다.
C군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외조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자랐고, 호칭도 '엄마·아빠'라고 불렀다.
A씨는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을 것과 부모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면 불이익이 클 것을 우려해 C군에 대한 일반입양을 청구했다. C군의 친부모도 입양에 동의했다.
그러나 1,2심은 "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어머니는 누나가 되는 등 가족 내부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을 초래한다"며 "현재 상태, 또는 후견을 통해 B군을 양육하는 데 지장이 없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의 재항고로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이 사건을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이날 대법원은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을 허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정법원이 미성년자의 입양을 허가할 것인지 판단할 때는 '입양될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친생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의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 입양의 합의 등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법은 존속을 제외하고는 혈족의 입양을 금지하고 있지 않고,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해 부모·자녀 관계를 맺는 것이 입양의 의미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조선시대에도 혈족을 입양하거나 외손자를 입양하는 예가 있었으므로 우리의 전통이나 관습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그 밖의 다른 혜택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조부모의 입양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항과 우려되는 사항을 비교·형량해 개별적·구체적인 사안에서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가사조사나 심문을 통해, 이 사건 입양이 C군에게 도움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구체적으로 심리하고 이를 비교·형량해 입양이 C군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되는지, 반하는지를 판단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점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같은 다수의견에 대해 조재연·민유숙·이동원 대법관은 "직계혈족인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하는 것은,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법률에 따라 친자관계를 인정하는 법정친자관계의 기본적인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조 재판관 등은 "특히 조부모가 입양 사실을 비밀로 하고 친자녀인 것처럼 키우기 위해 입양을 하는 경우, 양부모로서 양육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서 입양의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입양 사실을 숨기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양친자 관계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향후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미성년자에게 친생부모가 있는데도 그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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