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 가맹점 수수료 또 인하, 벼랑끝에 몰린 카드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3 18:27

수정 2021.12.23 18:27

당정 대선 앞두고 선심
업계 존립은 나몰라라
고승범(오른쪽) 금융위원장과 김병욱 국회 정무위 간사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에 대한 당정협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정은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을 현행 0.8%에서 0.5%로 0.3%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사진=뉴시스
고승범(오른쪽) 금융위원장과 김병욱 국회 정무위 간사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에 대한 당정협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정은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을 현행 0.8%에서 0.5%로 0.3%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사진=뉴시스
소규모 신용카드 가맹점이 카드사에 내는 수수료가 또 떨어진다.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는 23일 당정협의를 통해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을 현행 0.8%에서 0.5%로 0.3%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연매출 3억~5억원, 5억~10억원, 10억~30억원 구간에 해당하는 중소가맹점 수수료율도 각각 0.1~0.2%포인트 낮아진다. 전체 가맹점 가운데 96%가 수수요율 인하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카드 수수료율 인하는 예상했던 일이다.
2012년에 개정된 여신금융전문업법에 따라 금융위는 3년마다 영세·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을 새로 책정한다. 이번이 2012년, 2015년, 2018년에 이어 네번째다. 2년 전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카드채를 찍어서 자금을 마련하는 카드사들은 조달비용이 상대적으로 싸졌다. 그 덕에 요 몇 년 새 돈도 꽤 벌었다. 반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방역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게다가 내년 3월엔 대선이 열린다. 수수료율 조정권을 가진 고승범 금융위원장으로선 인하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앞서 카드사 노조협의회는 수수료율이 또 떨어지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실제 카드사 영업 중 신용판매 부문은 이미 적자 상태다. 이걸 카드론 영업 등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메우고 있다. 흑자는 인력·조직 구조조정을 통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몇몇 카드사들은 명예퇴직을 실시 중이다. 이렇듯 어렵게 흑자를 일구면 금융당국이 다시 수수료율 인하 칼을 들이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경영 효율화에 대한 보상치고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뿌리를 캐면 금융위가 수수료율을 정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였다. 2012년 이명박정부 때 국회는 여전법 개정을 통해 적격비용에 기초한 수수료 체계를 도입했다. 이때도 위헌 논란이 일었다. 국가(금융위)가 시장 가격(수수료율)에 직접 개입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정부가 가격을 정하는 사례는 처음"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 2년간 자영업자들은 국가 방역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렇다고 민간 카드사에 그 책임을 일부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여전법을 원상태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배하는 정치구도상 가능하지도 않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제도 개선이 차선책이다. 마침 고 위원장은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수료 재산정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현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은행은 이미 금리인상 기조로 돌아섰고, 내년엔 미국 등도 긴축 전환이 예상된다. 카드채 조달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금융위가 적격비용을 내세워 가맹점 수수료율을 올리겠는가? 어림없다.
자영업자와 정치권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내년 1·4분기에 TF를 출범시켜 제도를 손보겠다는 약속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fnSurvey